벤츠 전기차 화재 집단소송 쟁점은 ‘허위 광고’와 ‘설계 하자’

주재한 시사저널e 기자 2024. 10. 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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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EQ 차종 소유자 24명 집단소송
설계 결함도 주장···결함 은폐 시 최대 5배 ‘징벌적 배상’ 가능성

(시사저널=주재한 시사저널e 기자)

지난 8월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자동차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주변 차량 800여 대가 타거나 그을렸고, 1500여 세대 주민이 대피했다. 주민 20여 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1주일가량 전기와 수도가 끊겼고, 주민 800여 명은 임시주거시설에서 피난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사고는 국내 전기차 화재 가운데 가장 큰 피해 사고로 기록됐다.

전기차 공포증은 확산했다. 전국 아파트 곳곳에 '전기차는 지상에 주차하라'는 권고문이 붙거나, 아예 전기차 충전소를 지상으로 옮기는 일도 생겼다. 서울시는 충전율 90% 이하로 제한한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크게 줄어들었고,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는 판매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화재 두 달여 만인 10월10일 화재 차량과 같은 모델을 소유한 24명이 제조사인 벤츠 본사와 수입사인 벤츠코리아, 판매사, 금융리스사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돌입했다. 대상 차량은 파라시스(farasis) 배터리가 장착된 벤츠 EQ 시리즈 차종들이다. 앞으로 진행될 소송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벤츠가 차량에 탑재한 배터리 제조사를 소비자에게 속였는지, 그리고 배터리 설계 자체에 하자가 존재함에도 회사가 이를 은폐했는지 여부다.

8월1일 오전 6시15분쯤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차에서 불이 난 가운데 8월6일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아직 불에 탄 차량들이 놓여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벤츠의 2022년 거짓 인터뷰 논란

벤츠가 배터리 제조사를 속였다는 점은 첫 번째 책임의 원인으로 주목된다. 벤츠는 EQ 차량에 세계 1위 업체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 배터리가 장착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대부분 모델에는 세계 10위권 배터리 제조업체인 파라시스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드러났다. 원고들은 파라시스 배터리가 장착된다는 사실을 고지받았더라면 차량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매매계약이 무효임은 물론, 나아가 허위 광고에 기인한 손해배상 책임까지 묻고 있다. 실제 벤츠사 전기차 개발을 총괄한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 부사장은 2022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Q 차종에는 CATL 배터리가 장착된다고 밝혔다. 그는 '화재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소비자가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원고들을 대리하는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부품 발주 시점 등을 고려할 때 파라시스 배터리 장착은 최소 3년 전부터 결정됐을 것"이라면서 "개발 총괄 책임자가 배터리 제조업체를 달리 말한 것은 중요한 사항에 대한 허위 고지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벤츠사와 공식 판매 대리점들은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전기차를 판매할 때 'CATL 배터리를 적극 홍보한다'는 지침을 세웠던 사실도 뒤늦게 드러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벤츠코리아의 공식 딜러사 교육용 내부 자료 '2023 EQ 세일즈 플레이북'에서도 확인됐다.

벤츠의 허위·거짓 광고 논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쟁점이 됐다. 마티아스 바이틀 벤츠코리아 대표는 10월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비자를 기망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벤츠코리아가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배터리의 안정성이나 결함 등도 중요한 이슈다. 원고들은 배터리 설계 결함 등의 문제도 허위 광고의 근거로 삼고 있다. 파라시스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 열폭주(TR) 및 열전이(TP)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벤츠가 열폭주와 열전이 최소화에 필요한 설계를 채택하지 않고 "소비자는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것은 허위 광고라는 주장이다.

파라시스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열폭주와 열전이 위험을 낮추기 위해 단 2개의 셀 이후에 열전이를 멈추는 모듈을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벤츠는 이 모듈을 채택하지 않았다. 차주들은 이 같은 '모듈 미채택에 의한 결함'이 열폭주 차단 실패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배터리가 '외부적인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발표는 원고들에게 다소 불리한 조사 결과다. 차량이나 배터리의 결함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한 화재 발생 가능성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원고들은 배터리 주변부가 장애물의 충격을 막아내지 못하는 재질 및 구조라면 이 또한 설계 결함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 변호사는 "벤츠는 배터리 하부를 단순히 부직포로 감쌌을 뿐, 별도의 하부 쉴드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테슬라가 배터리 하부에 '방탄 등급'의 하부 쉴드 등 추가적인 보호장치를 설치한 것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우세종 변호사(법무법인 두우)는 "배터리 하부에 추가적인 보호 장치를 하느냐 마느냐는 자동차 업체마다 기술적 판단이 달라 현 단계에서 무조건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재판 과정에서 기술적 다툼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함 알고도 은폐했다면 징벌적 손배 가능

원고들은 '결함 은폐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요구한다. 벤츠가 결함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최소한 8월1일 인천 청라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후 결함의 존재를 알게 됐음에도 리콜 등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동차관리법은 자동차 제작자나 부품 제작자 등이 결함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축소 또는 거짓으로 공개하거나, 이를 시정하지 않아 생명, 신체 및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각 배터리팩 교체 비용이 700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최대 3억5000만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벤츠는 미국에서 전기차 일부를 리콜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2023년형 EQE 350+ 모델의 화재 때문이다. 이 차량은 주차 22시간 후 불이 났다. 미국 도로안전교통국은 고전압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관련 결함이 발견됐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물론 국내 화재가 BMS 문제 때문에 발생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사고가 1년 후 국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국내 사고 차량은 60여 시간 주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 변호사는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자동차)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 손해(화재)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 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손해(화재)가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 제조물(전기차)의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전기차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차해둔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특별한 외부적 요인 없이 화재가 발생했다면 전기차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 발생이 추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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