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게 그린 생의 최후, 하지만 죽음이 과연…

한겨레 2024. 10. 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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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룸 넥스트 도어
‘안락사 함께’ 요청 말기암 친구
죽음 공포 속 자살방조에 동참
애정·이해로 가득한 마지막 나날
현실서 넘쳐나는 파국은 못 담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평론가를 꿈꾸던 20대. 한 문화센터에서 ‘영화 비평가 과정’을 듣던 내가 첫 비평 과제의 주제로 선택했던 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1988)였다. 그때 알모도바르 작품 세계의 색감에 대해 분석했다. 여전히 그는 색채의 마법사라는 평가를 받고, 색의 배치야말로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언급된다.

이후로도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강렬한 매혹이었다. ‘하이힐’(1991), ‘라이브 플래쉬’(1997),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그녀에게’(2002), ‘나쁜 교육’(2004), ‘귀향’(2006) 등 그는 언제나 ‘이상한(queerness) 삶’을 앵글의 한가운데로 끌어당기며 성별 이분법을 뒤흔들고 이성애 규범에 침을 뱉었다. 그 불온함과 의외의 당당함이 고리타분한 세계에 갇혀 꿈틀거리던 내게 해방감을 주곤 했다. 공들여 완성한 미장센은 또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작가와 기자 친구의 우아한 대화

‘패러렐 마더스’(2021)에 이르러선 그가 개인의 삶과 역사의 고통을 연결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감탄하고 말았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 당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과 유해 발굴을 다루었고, 출산 과정에서 아이가 뒤바뀐 두 여자가 서로를 대면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가 흘러간다. 제주 4·3이나 보도연맹을 겪은 한국인으로서는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다.

며칠 전, 그의 신작이 개봉됐다. 그의 첫 영어권 영화이자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18분간의 기립박수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황금사자상을 받은 ‘룸 넥스트 도어’(2024)다. 더구나 주연은 줄리앤 무어와 틸다 스윈턴이 맡았다. 세 사람의 조합만으로도 흥분하기에 충분한 셋업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서면서, 나는 어쩐지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룸 넥스트 도어’는 생과 사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서 그 둘이 어떻게 삶이 기거하는 하나의 얼굴인지 탐색한다. 이야기는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생을 느꼈던 종군기자와 생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작가의 우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죽음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진 작가 잉그리드(줄리앤 무어)는 우연히 오랜 친구인 마사(틸다 스윈턴)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잉그리드는 병원에 입원 중인 마사를 방문하고, 두 사람은 한동안 따라잡지 못했던 소식을 나누면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작가와 기자의 대화는 우아하고 또 지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을 걸었던 화학치료가 실패하자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어려운 부탁을 건넨다. 다크웹을 통해 안락사할 약물을 구했으니 그 마지막을 함께해 달라는 것이다. 당황하는 잉그리드에게 마사는 말한다. 헛된 희망을 품으면서 고통 속에 살다 떠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미국에서 조력사는 물론 자살방조 역시 범죄다. 마사는 잉그리드의 가장 깊은 공포에 말을 거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범죄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하는 셈이다.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동기로 (나로서는 작가의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꽤 가혹한 이야기이지만, 이 가혹함 덕분에 ‘쓴다’는 행위는 종종 생의 에너지로 가득 찬다) 잉그리드는 결국 마사의 부탁을 수락한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마사의 마지막 나날들은 따뜻한 애정과 이해, 상호 존중으로 충만하다. 가끔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평생 홀로 꼿꼿하게 살아온 마사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에드워드 호퍼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단정하다. 동시에 언제나처럼 알모도바르의 색감과 색을 배치하는 센스란, 언제나처럼 눈부실 정도로 탁월했다. 그리고 나는 좀 의심스러웠다. 죽음이라는 것이 저처럼 단정하고 탁월할 수만은 없을 텐데.

“나답게 죽을 권리”를 말하지만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촘촘하게 짜인 미장센, 그러니까 예컨대 “마사의 죽음을 알려줄 붉은 문이라는 설정은 중요했는데 그건 일본에서 붉은색이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알모도바르)이라는 식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는 노골적인 상징화의 작업은, 오히려 죽음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틸다 스윈턴의 얼굴이 이 단순함에 초현실적인 느낌을 더한다. 샐리 포터의 ‘올란도’를 떠올렸던 이유다. 이 영화에서 젊은 날의 틸다 스윈턴은 시대와 성별을 초월해 영원토록 살았던 ‘올란도’를 연기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이토록 추상화되는 건 알모도바르가 구체적인 죽음과 세계의 파국을 동궤에 올려놓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에는 과거 마사의 연인이었고 이제는 잉그리드의 솔메이트가 된 데미안(존 터투로)이 등장한다. 작품의 원작인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라 하는데, 그만큼 알모도바르의 독자적인 주제의식이 들어가 있는 인물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런 세상에 애를 낳는 것은 죄”라고 말하는 데미안은 신자유주의와 전지구적 우경화가 초래하는 정치적, 경제적 파국과 그로 인해 가속화하는 기후위기로 인류가 끝장날 것이라 믿는다. 그런 데미안에게 잉그리드는 말한다. 죽어간다고 해서 늘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은 마사와 함께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패러렐 마더스’에서처럼 알모도바르는 다시 한번 개인의 삶과 인류 역사의 도저한 흐름을 연결한다. 그리하여 영화의 메시지는 꽤 투명하다. 구체적으로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 추상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파국 혹은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우리는 생의 역동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마사와 잉그리드가 지구 종말의 전조인 분홍색 눈에서 뉴욕 야경의 아름다움과 폐에 머무는 공기의 따뜻함을 감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파국은 그저 먹고살 만한 엘리트들이 “나답게 죽을 권리”를 말하고, 음악과 시를 읊으며 우아하게 기다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파국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부당하게 휩쓸려 나가는 현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매일매일의 죽음 역시 그렇지 않은가? 그건 각 잡힌 유화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시했다. 유럽의 감독들이 그리는 존엄사의 이미지,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겐 오로지 이 화려한 유화 속에서 수채화처럼 번졌던 줄리앤 무어의 얼굴만이 설득력이 있었다.

손희정 | 영화평론가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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