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과거의 존재’ 아닌‘현재를 함께 사는 동반자’ [배정원의 핫한 시대]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2024. 10.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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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살아가는 천만 노년층의 초고령화 사회 속 도전과 희망
디지털 기술, 새로운 차별 만드는 게 아닌 모든 세대 이어주는 도구 되어야

(시사저널=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최근 이사를 했다. 거처와 짐을 단순히 옮기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꽤 많은 것의 해지와 등록의 과정이 필요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과 통화하고 만나서 쓰고 서명하고 확인했던 작업이 거의 다 디지털화되어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의 AI상담사와 대화하거나 예약하고 등록하는 일을 순조로이 진행하는 것은 비교적 '얼리어답터'인 필자로서도 꽤 버거운 일이어서 자주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필자도 이런데 노인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하는 걱정이 들면서 비로소 어느 전화든 상담원과 통화하는 번호의 대기시간이 유독 길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노인들은 여기로 다 몰리는 것일 테다. 그러면서 얼마 전 들은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80세가 넘은 지인 역시 그 나이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꽤 문명화한 분이고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전화 걸기, 문자 보내기, 사진 및 동영상 보내기, 배달앱 이용하기 등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분이 최근의 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어 식당에 들어섰더니 사람은 없고 키오스크란 기계가 서있더란다. 워낙 스스로 디지털 문명에 적응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분이기에 키오스크로 주문을 시도했는데, 자꾸 에러가 뜨고 다시 돌아가고 하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는 거다. 점점 초조하고 당황스러워졌는데, 뒤에 늘어선 젊은이들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고는 결국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물러서야 했다는 거다. 그 후 키오스크 주문을 익혀 다시 갔더니 이번에는 더 복잡한 키오스크가 여러 가지 소스와 먹는 방식을 선택하라고 해서 결국 포기했다며 얼마나 세계가 빨리 변하는지 어지러울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그분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리에 함께한 지인들의 불만이 쏟아졌는데, 은행지점이 점점 없어지고 인터넷으로 금융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택시를 잡으려고 섰는데 전부 예약이란 불을 켠 채 지나가고 결국 자식에게 부탁해 앱을 깔았는데 다시 디지털로 택시비를 계산해야 해서 어렵더라, 호텔과 공항도 비대면 예약을 해야 해서 어렵다, 필요한 서류를 꾸미려 했더니 전부 디지털화되어 있어 시간이 너무 걸렸다, 요즘은 사람 만나 목소리 들으며 무슨 일을 하는 게 고마울 지경이라는 등등의 하소연들이었다. 이것이 2024년 대한민국 일상의 한 장면이다.

한 노인이 키오스크로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노인 삶의 질, 한국 OECD 최하위 수준

AI 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이 찬란한 기술의 혜택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많은 노인이 디지털 소외라는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은 노인들의 일상을 더욱 힘겹게 만들었다.

통계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2.2명으로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노인 빈곤율 역시 40.4%로 OECD 국가 중 최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는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일반 국민 대비 70.7%에 그친다고 보고한다. GDP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지만, 노인의 삶의 질은 OECD 최하위다. 

"노인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훔친다는 비난이 어디에서나 존재합니다. 근거 없는 편견들이 젊은이와 노인 세대 간 갈등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2024년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진 이 말은, 전 세계적인 노인 차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특히 물질적 풍요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비생산적 존재'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간다. 물질만능주의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는 노인을 '쓸모없는 존재'로 낙인찍는다. 평생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이제는 '사회적 비용'으로 취급받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과연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가. 

청년은 '현재를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자'

다행히 희망적인 변화의 조짐들이 보인다. 최근 시작된 '디지털 세대공감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준다. 청년들이 일주일에 두 번, 노인들과 함께 디지털 기기를 배우고 소통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노인 참여자의 디지털 활용능력이 45% 향상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참여 노인의 우울감이 38% 감소했다는 점이다.

세대 간 멘토링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은퇴한 전문직 노인들이 청년의 커리어를 지원하고, 청년들은 노인의 디지털 적응을 돕는 '상호 멘토링'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의 사회적 고립감이 56% 감소했으며, 청년의 90%가 노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답했다.

광주의 한 스타트업은 노인 맞춤형 AI 키오스크를 개발했다. 큰 글씨, 음성 안내, 천천히 응답해도 되는 시간적 여유. 작은 배려가 만든 변화다.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는 노인-청년 공동주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은 줄어들고, 노인들의 외로움은 덜어지는 윈윈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작은 변화들을 사회 전반의 큰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급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AI 기술 개발 단계부터 '모든 세대를 위한 기술'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노인의 인지적·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인터페이스 설계, 직관적 사용자 경험 등이 처음부터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디지털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단순한 사용법 교육이 아닌 세대 간 교류와 상호 이해가 함께 이루어지는 교육 모델이 필요하다. 셋째, 법적·제도적 보호망을 강화해야 한다. 연령차별금지법 제정, 디지털 접근성 보장 의무화, 노인 복지 서비스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넷째,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노인 복지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AI 돌봄 로봇,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 응급상황 감지 시스템 등은 노인의 독립적인 생활을 도울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처럼 "나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의 수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를 의미한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인은 '과거의 존재'가 아닌 '현재를 함께 사는 동반자'이며, 청년은 '미래의 주인'이 아닌 '현재를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자'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다. 한쪽으로 가면 '디지털 기술이 새로운 차별을 만드는 나라', 다른 쪽으로 가면 '기술이 모든 세대를 이어주는 나라'가 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모든 혁신적인 기술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AI는 세대 간 장벽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장벽을 허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내일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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