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람 같은 거대한 숨소리…유빙들 사이로 고래를 보았다

한겨레 2024. 10. 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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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중국 장성기지 방문길
2024년 여름의 마지막 기록자들
빙하 녹아내리고 성게는 사라져
대자연 앞에 인간 협력 절실한 곳
남극 우정이 미래의 힌트일 수도
바다 위의 유빙으로 결국 두 번째 잠수 시도는 어렵게 되었지만, 투명하고 파랗게 빛나는 얼음덩어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극지연구소 제공

배를 살살 몰아 양과 고 박사가 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너무 가까이 대면 다칠 수 있으니까 간격을 두었고 두 사람이 헤엄쳐 왔다. 안 연구원의 신호에 따라 칼 대원은 발판을 수면 가장 가까이 내렸다. 바다에서 나올 때 몸이 무겁기 때문이다. 고 박사는 일단 카메라부터 안에게 건넸다. 1미터는 될 법한 지지대에는 다양한 카메라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중 사진을 원색에 가깝게 찍기 위한 인공광원, 유리돔으로 덮인 방수 렌즈와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 몸체까지. 채취한 조류들이 어망에 실려 전해졌고 파이어맨과 안이 배 안으로 옮겼다. 다이버들은 물속에서 오리발을 벗어 갑판으로 먼저 던지고 난간을 붙들며 얼음바다를 빠져나왔다. 이제 끝났구나 싶어 “수고 많으셨어요” 인사하자 고 연구원은 발갛게 얼어 있는 얼굴로 또 들어갈 거라고 답했다.

“다시 입수해야 해요?”

“수중 시야가 좋지 않았어요. 25미터까지 내려갔어야 하는데 그만 방향을 잃어버렸거든요.”

고 연구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과학자들 모두 마음이 바빴다. 우리는 이번 시즌의 마지막 연구대이자 2024년 여름을 기록할 수 있는 최후의 사람들이었다. 출남극 후 이곳에는 서서히 추위가 들이닥칠 거였다. 배를 타고 다니던 곳까지 얼어 거대한 해빙이 생겨날 것이다.

“이제 마리안 소만으로 갑니까?”

칼 대원이 묻자 양 연구원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리안 소만은 세종 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얼음 장벽이자 세종 기지의 과거와 오늘을 지켜봐온 목격자였다. 쪼개지고 갈라져 유빙을 탄생시키는 이 얼음 장벽은 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텅텅텅 무너져내렸고 그런 유빙들의 힘으로 바다를 휘저어버렸으니까.

기후변화가 생태계를 바꾸고

얼음 아래로 잠수해 조류를 채취하고 있는 연구자. 극지연구소 제공

지난 세미나 때 고 연구원은 마리안 소만 빙벽이 1.5킬로미터나 후퇴했다며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빙벽 가까이로 잠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위험해서 연구소가 허가를 내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하며 그가 잠깐 웃었을 때 나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남극 생태 변화를 기록하고 싶어 하는 투지에 큰 인상을 받았다. 마리안 소만의 평균 수심은 100미터이지만 최근 빙하가 녹아내린 곳은 수심이 20~30미터 정도로 얕다고 했다. 빙하가 사라지고 암반까지 드러난 곳에서는 해조류와 동물들이 옮겨와 생태계를 이루는 중이었다. 그런 기후 변화적 측면에서도 마리안 소만은 우리가 지켜봐야 할 중요한 현장이었다.

“채취해 오신 것들은 뭐예요?”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몸을 녹이는 고 연구원에게 물었다. 어망에서는 아주 깊고 진한 바다향이 났다.

“올라오다 수심 5미터에서 겨우 발견한 것들이에요. 날개잎산말, 남극연두산말, 큰잎나도산말, 자주엷은잎, 그나마 다행이었죠.”

“세종 기지 주변 바닷속에도 그런 것들이 있나요?”

“그럼요, 일단 산말류(Desmarestia spp)들이 있고요, 남극 가리비와 성게도 살고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이상하게 성게를 한 개체도 보지 못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산호가 아닌 젤라틴으로 이뤄져 말미잘에 가까운 연산호들도 있습니다. 물고기들도 제법 다양한데 안 연구원이 남극대구를 잡는다니까 나중에 한번 보세요.”

“어떻게 잡으실 건데요? 낚시로요?”

눈이 둥그레진 내가 묻자 안은 통발을 설치할 거라고 답했다. 혹시 잡히면 꼭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마리안 소만이 눈에 들어올 즈음 무언가가 텅텅텅 하고 세종 1호에 부딪혔다. 발밑으로 제법 큰 진동이 일었다. 깜짝 놀라 둘러보니 널찍한 유빙들이 수면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잠수 못 하겠는데요?”

칼 대원의 말에 양과 고 연구원이 갑판으로 나가 확인했다.

“그렇겠네요. 안 되겠다, 기지 앞에서 잠수해야겠어.” 고 연구원은 얼른 계획을 수정해 새 일정을 짰다. “네, 그래야겠네요.” 양이 대답했다. 우리는 유빙들에 둘러싸인 채 잠시 정박했다. 바닷물이 어찌나 맑은지 수중에 잠겨 있는 부분까지 훤히 보였다. 그때였다.

“고래네요!”

파이어맨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전에 나는 고래의 숨소리부터 들었다. 마치 지구의 한꺼풀이 벗겨지는 듯한 아주 커다랗고 거친 숨소리였다. 바다에서 솟아올라 호흡을 내놓고 다시 물속으로 잠기는 고래를 보고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흰 유빙들 사이로 수영하는 고래의 움직임은 ‘살아 있음’ 그 자체였다. “와, 작가님 고래를 드디어 봤네요.” 칼 대원 말에 내가 웃었고 우리는 오래오래 고래를 지켜보다가 기지로 향했다. 거친 바람 같은 고래의 숨소리는 영영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해바라기씨에 담긴 우정

중국 장성기지를 방문한 한국 세종기지 대원들과 김금희 작가(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장성기지 대장(왼쪽에서 네번째)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왼쪽부터) 강동경, 송석록, 권영훈, 중국 장성기지 대장, 김기현, 필자, 민준홍. 극지연구소 제공

중국의 극지(남극) 답사 40주년을 맞아 중국 장성(창청) 기지를 방문하는 날, 총무가 ‘작가님 혹시 얇은 외피는 없으시죠?’ 하고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얇은 외피? 대여한 옷 중 한번도 입은 적 없는 바람막이를 꺼냈다. ‘있어요!’ ‘아 다행입니다. 한국 대표이니 옷을 통일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나중에 들으니 총무가 그렇게 물어본 건 내가 내내 ‘방한 상의’를 입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 오리털 패딩은 세종 기지에 오는 누구도 웬만해서는 대여하지 않는 것으로, 남극 내륙의 장보고 기지 대원들을 위한 방한복이었다. 왜 그런 정보들은 내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민간인이 들어와 이렇게 길게 머무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그런 개인을 위한 맞춤 안내까지 마련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보름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다들 추운 날에는 작가님을 부러워했을 거예요.”

여태껏 혼자 장보고 기지 패딩을 입고 다녔다며 푸념하자 엘 박사는 그런 적절한 말로 무안함을 덜어주었다.

가벼운 외피 위에 방수복을 챙겨 입고 드디어 ‘한국 대표 방문단’이 되어 조디악에 올랐다. 총무와 월동 천사, 기상청장, 강 선생, 중장비를 맡고 있는 송 대원, 나 이렇게 여섯명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대원들은 해바라기씨 이야기를 했다. 바지선을 빌리기 위해 우리 기지를 방문했을 때 중국 대원들이 선물했는데 엄청나게 맛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기지들끼리 그렇게 돕기도 하느냐고 묻자 “세종 기지는 인근 기지들의 ‘키다리 아저씨’”라고 송 대원이 말했다. 험지에서 서로 돕는 건 당연하다고. 하긴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각별한 협력이 필요한 곳이었다. 누구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어 ‘인간’보다 대륙 자체의 ‘자연성’이 앞섰고 그 안에서 인간은 모두 다를 것 없는 ‘종’(種)이었다. 나는 이런 남극의 우정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힌트일지 모른다고 상상하고 있었다.

“해바라기씨가 그렇게 맛있어요?”

“네, 그래서 한 포대 더 부탁해볼까 해요.”

대원들은 그 일을 결국 기상청장에게 미뤘다. 가장 영어를 잘했으니까. 기상청장은 자기가 꼭 구해보겠다며 날카로운 눈매로 의지를 불태웠다. 얼마나 맛있기에 그럴까 싶어 나도 기대가 들었다. 맥스웰만 중간쯤 갔을 때 조디악 한 대가 나타났다. 이형근 대장님이 모는 조디악이었다. 아들리섬으로 식생팀을 데려다주고 필즈반도까지 에스코트해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조디악 두 대가 추격하듯, 혹은 아이들처럼 술래잡기하듯 신나게 내달렸다. 길을 안내하는 대장님의 능숙한 운전은 남극해를 미끄러지듯 달려 우리를 장성 기지로 금세 데려다주었다. 그러고 세종 기지로 돌아가는 조디악을 향해 우리는 고맙다며 손을 흔들었다.

남극의 우체통이 말하는 것

중국 장성기지에 있는 우체통. 김금희 제공

선착장에는 장성 기지 대장님과 대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송도 2호’라는 한글이 쓰인 바지선도 보였다. 대장님이 우리 대원들을 맞는 모습은 형제에 가까웠다. 허허허허 웃으며 다정하게 악수를 나눴고 어깨동무를 하며 기지 안으로 안내했다. 해바라기씨 정도는 문제도 아닐 것 같았다. 필즈반도는 바턴반도와 전혀 다른 풍광이었다. 사방이 검회색 자갈이었고 세종 기지 주변에는 흔한 지의류와 식물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커다란 창고에서 방수복을 벗은 다음 기지 박물관을 둘러봤다. 장성 기지 건설 역사와 그 주역들의 사진이 벽면에 크게 걸려 있었다. 내가 장성 기지에 간다고 하자 엘 박사는 두 가지에 놀라게 될 거라고 말했는데 온실과 체육관이었다. 기상청장이 혹시 온실을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우리를 안내한 기지 의사는 현재 공사 중이라며 미안해했다. 지금 몇명이나 머물고 있는지 내가 묻자 대부분 떠나고 서른명 정도 남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와 비슷했다.

박물관 안쪽으로는 재봉틀 같은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우체통이 있었다. 남극에서의 우편제도가 한때 영유권 주장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주소를 부여하고 우표를 유통시키면(우표 역시 화폐의 일종이니까)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이었다. 아직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미국과 칠레,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이 우편제도를 운영 중이었다. 장성 기지도 여름철에는 한시적으로 우체국을 운영한다고 했다. 남극에서 보내는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요즘 같은 세상에 육개월이나 혹은 일년이 걸릴지도 모를 편지를 쓰고 기다린다는 것. 나는 그 편지의 반가움에 대해 상상하다가 극지 답사 40주년 기념식이 시작된다는 말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오는 본관으로 향했다.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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