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앞에선 장애도 비장애도 없어”...올리비에 드브레展 수어해설 투어 [현장리뷰]

이나경 기자 2024. 10. 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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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미술관 문턱 낮추고 문화 향유 기회 제공
장애·비장애인 예술 속 경계 없애 ‘호평’
지난 17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 수어해설 투어에서 (사)한국농아인협회 경기수원시지회원 박정자씨(가명·63)(왼쪽)와 김현철씨(가명·80)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나경기자

 

“이 작품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건가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기대어 있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사랑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느껴집니다.”

김현철씨(가명·80)와 박정자씨(가명·63)는 올리비에 드브레 작가의 작품 ‘기호 풍경(1955)’ 앞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작품의 의미와 그림 속에 표현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이들은 수어 해설사와 학예사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이들의 표정은 환한 미소로 밝아졌다. 더 깊이, 풍부하게 작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5회째 수어 해설에 참여 중인 김씨는 “처음에는 미술관을 방문하고 전시를 하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색했지만, 수어 해설에 참여하면 할수록 미술에 대해 느끼게 되는 점이 많아지는 것 같다”며 “수어 통역과 함께할 때 작품과 교류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해설 투어에 참여한 박씨는 “세계 2차 대전의 참혹함을 그려낸 작품이 특히 인상 깊었다”며 “해설과 함께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어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웃어 보였다.

손한올 수어해설사(왼쪽)가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폭풍우 치는 루아르강의 진보라와 흰색(1981)’(왼쪽) 작품은 작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프랑스 투르 지역의 루아르 강변을 배경으로 한다. 이나경기자

지난 17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올리비에 드브레’ 작가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의 수어 해설 투어 현장은 끊임없는 손짓의 대화와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다.

농아인 초청 수어 해설 전시 투어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모든 시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2021년부터 운영한 전시 수어 해설이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전시 도슨트 해설을 제공하듯, 농아인이 더 깊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수원 지역의 농아인 관람객을 초청해 전문 수어 해설사가 도슨트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날 현장에 자리한 (사)한국농아인협회 경기수원시지회원 20명은 프랑스 서정 추상의 대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초기 작품부터 전 생애를 아우르는 그의 작품 세계와 인생사를 수어 해설사의 설명과 도슨트의 이야기로 함께했다.

상하이에서 올리비에 드브레 작가(1998)와 그의 작품 ‘풀밭 위의 소녀(1940)’. 수원시립미술관 제공

투어가 시작하자 고요한 그곳에는 쉴 새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손한올 수어 해설사는 자신의 손짓이 보이도록 24㎝ 높이의 이동식 사다리에 올라가 농인 관람객들에게 손의 언어를 통해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했다.

농인의 언어는 손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세계 2차 대전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겪으며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잔혹함을 드러냈던 작가의 작품에선 심각한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하나의 단편적인 말보다 더욱 풍성한 언어로서 예술의 의미를 전했다.

관람객들은 마치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강한 열정과 눈빛으로 수어 해설사의 설명에 몰입했다. 드브레 회화의 다채로운 색감은 이들에게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인상 깊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손뼉을 치며 즐거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날 손 해설사는 “해설하는 내내 작품에 대한 질문이 그치지 않았다”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 즉 배경지식의 유무에 따라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지는 것은 농인이나 청인이 다를 게 없다”고 설명했다.

수어 해설사(왼쪽)와 학예사(오른쪽)가 관람객의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그의 말처럼 예술 앞에선 장애도, 국경도, 언어도 장벽이 되지 않았다. “나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앞에 서 있는 내 안의 감정을 그린다”는 작가의 말처럼 특별한 언어가 없어도 농인과 청인은 처음 작품에 대한 감상을 머리가 아닌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감상평은 천차만별이었다.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설이 곁들여졌을 때 농인과 청인은 함께 또 다른 세계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수어 해설 투어 외에도 지난해 9월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리플릿 제작 등 다양한 시민의 문화 향유를 위한 ‘배리어프리’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이진철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전시과장은 “예술의 경계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넓은 계층에게 다가가는 것이 ‘공공미술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며 “시립미술관이 1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는 접근성, 다양성, 포용성을 기반으로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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