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땅꺼짐…땅속 빈 공간을 찾아라

배하진 기자 2024. 10.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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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대문구 연희동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가 통째로 땅속에 빠졌다. 연합뉴스 제공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통째로 땅속에 빠졌습니다. 땅이 꺼지면서 도로에는 큰 구멍이 생겼고 차에 타고 있던 사람 2명은 중상을 입었어요. 도로가 순식간에 가라앉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땅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 PART 1. 도심에서 땅이 푹 꺼진다?

서울에 이어 경기도, 부산까지 도심에서 연이어 땅이 꺼지는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9월 21일 부산 사상구의 한 도로에서도 땅 꺼짐이 발생해 트럭 2대가 빠졌어요.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는 '땅 꺼짐', 대체 어떤 현상일까요? 

지역별 지반침하사고 현황(2018~2022년 기준,  2023 지하안전 통계연보, 국토교통부), 땅 꺼짐은 땅속에 있던 흙이 사라지고 땅속에 빈 곳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이때 지하수의 속도와 양이 갑작스레 변하는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왼쪽).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에서 발생한 땅 꺼짐 현장에서 과학수사대가 구멍의 깊이를 측정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제공

● 5년간 전국 1127곳 땅 꺼졌다  

연희동 도로에 난 구멍은 크기가 무려 가로 6m, 세로 4m나 됐습니다. 구멍 아래에는 2.5m 깊이의 텅 비어 있는 굴이 있었어요. 이처럼 땅속에 빈 곳이 생기면서 땅이 내려앉는 현상을 '지반 함몰' 또는 '땅 꺼짐'이라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에서 땅 꺼짐은 총 1127건 발생했어요. 해마다 평균 225건, 이틀에 한 번 꼴로 일어난 것입니다.

땅 꺼짐은 땅속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시작 됩니다. 땅은 흙과 돌, 땅속을 흐르는 물인 지하수로 채워져 있어요. 땅속에서 지하수는 흙을 이루는 알갱이 사이의 틈으로 서서히 흐릅니다.

그런데 지하수가 갑자기 빨리 흐르거나 양이 많아지면 물이 흙을 씻어내 빈 곳 이 생길 수 있어요. 빈 공간이 점점 커지다 보면 그 위에 있던 땅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쑥 꺼지면서 땅 꺼짐이 발생합니다.

서울시는 연희동에서 일어난 땅 꺼짐은 지형적 특성, 지하 시설물, 주변 공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결합해 발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고가 난 도로 밑 땅은 지반의 특성상 땅 꺼짐에 취약 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사고 지점은 궁동산과 경의선 철도 사이 경사지에 있어 지하수가 빨리 흐릅니다. 지하수가 빠르게 흐르면 흙이 씻겨 나갈 수 있어요. 또 사고 지점은 다른 곳에 있던 흙을 옮겨다 덮고 도로를 만든 매립지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단단하게 굳어진 땅보다 지반이 불안정합니다.

9월 21일 부산 사상구 인근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 규모의 땅 꺼짐이 발생했다. 차량 두 대가 빠졌으며 인명 피해는 없었다. 부산광역시 소방재난본부 제공

서울시는 사고 지점 주변의 빗물펌프장 공사로 인해 지하수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짚었습니다. 땅을 뚫고 파는 공사를 하면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흘러 들어올 수 있어요. 지하수 흐름이 갑자기 변하면 주변 흙이 이미 인간의 개발 행위로 형성된 빈 공간으로 이동해 원래 흙이 있던 곳은 비게 됩니다.

유충식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땅꺼짐은 공사 등 인위적인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땅 꺼짐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 PART 2. 도시 지하 곳곳에 빈공간이? 

도시의 땅 아래에는 지하철, 수도관, 통신선 등 도시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시설들이 있습니다. 곳곳에서 땅을 뚫거나 파내는 공사도 쉼 없이 계속됩니다. 지하의 이런 변화 때문에 때로는 땅 꺼짐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물 새고 흙 사라진다

도시의 땅 밑에는 물이 지나는 관인 상수도와 하수도가 있어요. 상수도는 사람들이 마실 물을 공급하고 하수도는 사람들이 사용한 더러운 물을 정화 처리장으로 보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땅 꺼짐 사고 중 절반 이상은 상하수도관이 낡아서 손상된 것이 원인이에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땅 꺼짐 사고 1127건 중 하수도 손상에 의한 사고가 506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도관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물이 새어 나옵니다. 깨진 틈 사이로 흙이 쏟아지거나 수도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흙과 같이 다른 곳으로 쓸려가면 수도관 위에 빈 곳이 생겨 땅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땅속 빈공간이 생기는 이유.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우리나라 땅 밑에는 설치한 지 오래된 낡은 상하 수도관들이 많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전체 상하수관 중 30년 이상 된 하수관로는 전체의 55.6%, 상수관로는 전체의 36%나 됩니다.

땅 꺼짐은 집중호우가 이어지는 6~8월 자주 발생합니다. 집중호우 기간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 들어 지하수의 양이 갑자기 많아집니다. 지하수가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면서 흙을 씻어내고 지하에 빈 곳이 생길 수 있어요.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로 인해 더 강하게 더 자주 찾아오는 극한 강우가 땅 꺼짐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합니다.

유동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긴 장마와 홍수는 지하수 흐름에 변화를 일으키거나 흙의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지반 함몰 역시 기후 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부실 공사도 땅 꺼짐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건물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팔 때는 주변 땅이 무너지지 않도록 벽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벽에 틈이 생기면 주변 흙과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새어 나와 그 위에 있던 땅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터널을 뚫을 때도 주변 흙과 지하수가 터널 내부로 들어와 터널 위에 빈 공간을 만들 수 있어요. 빈 공간이 점점 커지거나 위로 이동해서 지표면과 가까워지면 땅 꺼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PART 3. 땅 꺼짐 어떻게 막을까? 

도시의 땅 꺼짐은 자연재해가 아닌 지하 공간을 개발해 땅이 약해지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은 땅속을 면밀하게 살핀다면 땅 꺼짐을 예측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유충식 교수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촬영된 위성 영상을 활용해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의 땅이 가라앉는 정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땅이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가라앉은 구역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DB, 유충식 제공

● 땅속 빈 공간을 찾아라! 

땅 꺼짐을 예방하려면 땅속에 빈 곳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입니다. 전자기파 장치가 달린 자동차가 땅속으로 전자기파를 쏜 이후 반사돼 돌아오는 전자기파 정보를 통해 땅속에 빈 곳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부터 정기적으로 GPR 탐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GPR 탐사만으로 모든 땅 꺼짐을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GPR이 사용하는 전자기파는 습기나 금속에 의해 쉽게 흡수되어 지하 2m까지만 도달하기 때문이에요. 지하 2~30m 깊게 땅을 파고 뚫는 공사가 이뤄질 경우 주변 땅속에 생겨난 공간은 GPR 탐사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땅속을 보다 면밀히 살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GPR보다 더 깊은 지하까지 도달할 수 있는 '탄성파'를 활용한 탐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탄성파는 물이나 금속을 만나도 쉽게 흡수되지 않아 전자기파보다 땅속 내부로 더 잘 전파됩니다. 지하철처럼 지하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통해 탄성파를 쏘면 이후 반사돼 돌아오는 탄성파 신호를 분석해 빈 공간이 있는지 조사할 수 있습니다.

2022년  유충식 교수는 인공위성이 관측한 영상을 이용해 땅이 가라앉는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제안했어요. 위성이 보낸 두 개 이상의 영상 자료를 비교해 땅의 높낮이를 분석하면 땅이 얼마나 크게 가라앉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넓은 지역을 살펴볼 수 있어 시간에 걸친 변화를 관찰하는 데 효율적입니다. 유충식 교수는 "일부 땅 꺼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땅이 가라앉으며 생기는 문제"라며 "다른 곳보다 크게 가라앉는 지역을 땅 꺼짐에 취약한 지역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땅 꺼짐은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만든 매립지나 모래나 점토처럼 흘러내리기 쉬운 땅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지도를 통해 땅 꺼짐에 취약한 곳을 미리 파악한다면 땅 꺼짐 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요. 사고가 난 후에도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도시 리즈에서 요크까지의 땅속을 보여주는 3D 지도. 영국 지질 조사국 제공

2021년 영국 지질 조사국은 런던 등 5개 도시의 땅 속 3D 지도를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지도로 관심 구역의 땅속 모습을 볼 수 있어 도시 계획이나 개발, 각종 토목 공사에 활용되고 있어요.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땅속의 지층 구조와 암반의 특성 등을 정확하게 표시한 3D 지질 공학 지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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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하진 기자 hae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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