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세로 화면 전성시대

조인원 기자 2024. 10.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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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화면과 다른 세로 영상의 문법은?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세로형 영상 광고가 보이고 있다. 최근 나온 LED 세로전광판은 한낮에도 모델의 클로즈업된 표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인원 기자

요즘 서울 도심엔 대형 세로형 광고판들이 자주 보인다. 멀리서 지나가는 행인이나 차 안에서도 보이는 세로 광고판은 대부분 패션이나 신발, 가방 같은 유명 브랜드 상품 광고나 넷플릭스 같은 OTT 드라마와 영화 광고들이 많다. 대형 세로 화면에 모델의 얼굴이나 다리까지 전신이 세로 화면에 뜨면 잠깐 보고도 또렷한 잔상이 남는다. 뭐든 눈에 띄려면 클 필요가 있다.

9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 차도변 빌딩 3개에 설치된 세로형 광고전광판들. 광고판들은 한낮에도 모델의 클로즈업된 표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인원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과 건너편 길 대로변엔 모두 5개 세로형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옆엔 고래도 헤엄칠 만큼 길고 큰 가로 광고판이 있지만 트레이드타워와 현대백화점, 서울파르나스 호텔 앞엔 빌딩마다 세로형 광고판이 붙어있다. 강남역 앞과 중구 명동, 광화문사거리와 동대문 패션타운 같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거리도 세로형 광고판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강남역 앞 9번 출구에서 교대역 방향 서초대로에는 빌딩의 대형 옥외광고 뿐 아니라 인도에 가로등 높이의 기둥들이 화면에 광고를 틀고 있다.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근에 설치된 세로형 광고판. 최근 나온 LED 세로광고판은 한낮에도 모델의 클로즈업된 표정이 선명하게 보인다. 맨 오른쪽은 영상이 아닌 사진 광고판. /조인원 기자

세로 광고판은 크기 뿐 아니라 모양까지 다르게 설치되는데 빌딩의 모서리 부분이 곡선으로 휘어진 형태로 행인들이 건물 앞과 옆에서도 다니며 볼 수 있게 해 놨다. 업계 전문가는 “휘어진 광고판은 3D 아나모픽(anamorphic illusions)이라는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 효과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왜 대형 세로 광고판들이 늘어날까? 기자는 건물 외벽의 옥외 광고 관리업체와 광고영상을 촬영하는 감독들에게 세로 광고판이 늘어나는 이유를 물었다. 대부분 돌아온 답변은 우리가 많이 보는 매체의 화면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TV 드라마나 영화보다 틱톡이나 릴스, 유튜브 쇼츠 같은 숏폼 콘텐츠를 보는 스마트폰의 세로 영상들이 늘다보니 옥외광고판도 세로로 변한 것이 하나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건물 모서리에 설치된 세로형 광고판에서 영화 광고가 나오고 있다. /조인원 기자

자극적인 재미를 짧게 편집해서 보여주는 숏폼콘텐츠는 어느새 나이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시청하는 영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세로로 보듯이 LED 기술이 발전하면서 화면 크기가 커진 모습이 세로광고판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상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폰 화면을 가로로 돌려서 보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며 “그들은 이미 세로가 익숙한 세대”라고 했다.

8일 서울 강남역 앞 인도에 기둥처럼 늘어선 폴(POLE)형 전광판. 세로형 전광판은 건물 외벽 뿐 아니라 크고 작은 형태로 점점 눈에 익숙한 형태로 늘고 있다. /조인원 기자

기자는 서울 도심의 세로 광고판을 보면서 밝은 대낮에도 영상이 얼마나 잘 보일까 궁금해서 일부러 날씨가 좋고 햇빛이 순광으로 화면을 비추는 시간에 맞춰 다녀보았다.

LED(발광다이오드, Light Emitting Diode)로 제작된 세로 광고 화면은 광선에 관계없이 생각보다 또렷하고 선명했다. 한 옥외광고업계 관계자는 “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초기의 전광판 밝기보다 3배가 넘는 1만 5000니트(nit: 화면 밝기 단위) 이상으로 밝아졌지만, 낮에도 7000니트나 8000니트면 충분해서 그 정도로 낮추고 있다”고 했다.

옥외광고판은 현재 법령에 따라 일정한 크기의 제한을 받지만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은 건물이나 주변 환경에 맞추면 면적에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다.

8일 오후 서울 강남역 앞 한 건물에 대형 세로광고판에 한 유명 브랜드의 광고가 나오고 있다. /조인원 기자

한편 세로 영상들은 가로 영상을 단순히 세로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일까? 패션광고업계에서 일하는 CF감독 몇 명한테 물어봤더니 서로 다른 대답들이 돌아왔다. 한편에선 가로 화면인 TV와 세로 화면이 압도적인 소셜미디어 숏폼 영상을 같이 내보내야 해서 기본적으로 가로로 촬영하고 숏폼 콘텐츠용은 다시 편집한다고 했다. 다만 세로 편집을 위해 충분히 다양한 앵글로 촬영하는데 4K 이상의 높은 화소인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면 가로 영상을 세로로 잘라서 사용해도 문제없다고 했다.

9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세로형 영상 광고가 보이고 있다. 세로 영상은 숏폼콘텐츠 등에서도 같은 세로로 보이는데 주로 화면에 가득 찬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많다. /조인원 기자

반면 다른 감독들은 “과거엔 원소스멀티유즈(OSMU)를 예상해서 한번에 촬영하고 TV용과 소셜미디어용으로 각각 편집했다면, 요즘은 광고주가 세로로 규격까지 알려주는 경우가 많아서 아예 카메라를 돌려서 촬영한다”고 했다. 특히 MZ 세대가 즐겨보는 숏폼 드라마나 릴스, 쇼츠 등은 아예 전부 세로로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숏폼 드라마를 제작하는 한 감독은 “가로에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미쟝센(Mise-en-Scène, 화면구성)이나 구도를 세로에서는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가령 세로화면은 공간 전체를 설명하고 보여주는 설정 샷(Establishing Shot)을 보여주기 어렵다. 또 가로 화면이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한 프레임에 보여줄 수 있다면 세로 영상은 한 사람과 다음 사람의 표정을 각각 클로즈업해서 연결하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9일 서울 홍대앞역 한 극장 외벽에 걸린 세로화면 광고판, 외부에서 가로로 촬영된 홍보영상을 세 개로 겹쳐서 세로 화면에 보여주고 있다. /조인원 기자

이렇다보니 한 패션영상 감독은 “기존 영화나 드라마를 오랫동안 찍던 사람들은 영상을 세로로 찍어달라는 말을 이해 못해서 그냥 찍을 테니 알아서 잘라 쓰시라고 한다”고 했다. 스틸 사진의 경우엔 초상 사진(portrait)나 패션 화보 등이 거의 세로 형태가 많아 구도도 다양하게 잡을 수 있지만, 영화나 TV 드라마, 광고 등의 동영상은 이전에 휴대폰 화면처럼 세로 영상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숏폼 영상을 찍는 감독들은 세로 광고 영상이 기존 가로 앵글처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없다 보니 “오히려 예산은 절약된다”고 했다.

기자가 다녀본 현재 서울 도심의 세로 광고판에는 가로 광고가 가끔씩 등장했는데 특히 정부나 구청 광고들은 세로 화면 광고판에 가로 영상이 빈 여백으로 가운데 배치되거나 아예 위 아래 같은 영상으로 세 개가 겹쳐서 나오기도 했다. 옥외 광고판도 가로에서 세로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보였다.

4일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길 건너 빌딩 모서리에 설치된 세로형 광고판. 가로 영상이다 보니 가운데를 제외한 위 아래에 여백이 크게 보인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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