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처럼 세운 ‘세컨드’…패배의 반성문을 쓰고야 깨달았다 [ESC]

한겨레 2024. 10.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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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 주짓수
세컨드 없이 패배 후 세컨드 초빙
경기 때 지시 안 들려…또다시 패배
승패 아닌 다음 기회 열어준 스승
양민영 작가(좌)가 경기 시작과 함께 상대 선수에게 예의를 표하는 콤바치 동작을 하고 있다. 윤성빈 제공

“저긴 이제 지쳤다, 천천히 해!” 순간 경기 중인 걸 잊고 조용히 하라고 대거리라도 하고 싶었다. 상대 팀의, 선수보다 더 호전적인 코치 때문이었다. 그는 큰 소리로 선수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와 오래 훈련한 선수는 지시대로 척척 움직였다. 경기력에서 밀리는 건 차치하고 내 편에서 조언해 줄 사람이 없다는 박탈감이 너무 커서 이미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포츠 사전에는 경기 중인 선수를 보조하고 각 라운드 사이에 선수에게 조언하는 사람을 일컬어 ‘세컨드(second)’라고 명시한다. 멋모르고 나간 첫 대회에서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나는 구경할 친구들만 잔뜩 부르고 정작 중요한 세컨드의 자리는 비워뒀다. 매트에 올라서야 세컨드가 없음을 뒤늦게 후회했다.

너무 돋보인 국제심판 ‘나의 세컨드’

경기가 시작되면 세컨드는 선수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준다. 선수가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데 필요한 조언이 주를 이룬다. ‘공격하라’, ‘방어하라’ 아니면 ‘기다려라’ 등의 지시 사항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상대 선수가 시도하려는 공격 기술을 재빨리 알려준다든가, 일종의 심리전으로 상대의 사기를 꺾기도 하고, 경기 시간이 몇 분 남았는지 일러주기도 한다.

첫 경기를 대패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서 기술적, 심리적으로 나를 완벽하게 끌어줄 만한 세컨드를 구하겠다고 결심했다. 일찌감치 노련한 세컨드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기본기도 없는 나를 급하게 훈련시킨 코치이자 국제심판의 자격으로 주짓수 경기 심판들을 교육한 심판들의 심판이었다. 처음엔 세컨드 자격으로 경기장에 오는 걸 꺼렸으나 끈질기게 조르고 졸라서 수락을 받아냈다.

경기가 있던 날 대회 주최자, 심판들, 다른 주짓수 도장의 관장들이 나의 세컨드에게 머리 숙여서 인사했다. 나는 경기장을 나설 때가 돼서야 나와 세컨드의 조합이 부자연스럽다는 걸 알아차렸다. 국내 주짓수 1세대로 항상 선두에 있던 그가 고작 블루벨트의 세컨드를 맡은 것이나, 또 이처럼 훈련되지 않은 부진한 선수를 데리고 나온 게 전부 의아한 일인 것이다. 내 기량에 비해서 세컨드만 너무 돋보여서 한마디로 말하면 ‘개 발의 편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결정에 만족했다. 특히 매트에 올라서서 입장을 기다릴 때, 심장이 죄어오고 숨이 멎을 것 같던 순간, 세컨드가 무심하게 양어깨를 두드려줘서 잠시나마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극적인 드라마까지 더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나는 세컨드의 지시를 거의 듣지 못했다. 5분간 일시적으로 청력이 손실되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진공 상태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극도의 긴장 때문인지 모든 감각이 닫혔고 어디를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른 채 경기가 종료됐다.

매트에서 내려온 나에게 세컨드는 물었다.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면서 날 왜 부른 거야?” 나는 대답했다. “부적이나 토템 같은 거죠.” 그렇게 스승은 홀연히 경기장을 떠났다. 충격이 가시고 다시 사리 분별이 가능해진 나는 다음 할 일을 하러 갔다. 내가 할 일은 모든 걸 잊는 거였다. 뼈아픈 패배를, 창피함을, 괴로움을, 피로와 흥분을 한꺼번에 잊고자 뒤풀이를 핑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굴욕감을 80%쯤 잊었을 무렵 동료가 단체 카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보여줬다.

경기 리뷰를 준비하라는 지시와 함께 세컨드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열 개도 넘는 질문은 예를 들어 ‘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했나?’, ‘여기서 어떻게 대처해야 했나?’ 같은 것들이었다. 거짓말처럼 술이 깨면서, 한순간 경기가 열렸던 매트 위로 다시 끌려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설욕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그곳에 갇혀서 영원히 나올 수 없음을.

나는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죄인처럼 몇 시간에 걸쳐 기나긴 반성문을 썼다. 왜 잘못된 판단을 했고 연습대로 움직이지 못했는지에 관해. 불현듯 진 것도 서러운데 자학까지 해야 하나 억울했다. 그러나 반성문은 약과였다. 훈련 장소였던 도장의 별실에서 강도 높은 공개 비판이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당할 때마다 마음에 저항이 솟구쳤고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다시 매트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선수 아닌데 선수처럼 훈련한다는 것

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 번이나 무참하게 패하고도 주짓수 대회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뤄지는 스파링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는 아마추어이고 주짓수는 취미일 뿐 과도하게 몰입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된 훈련은 꽤나 진지했다. 훈련을 함께할 파트너가 있어야 하고, 이기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며, 정확하고 빠르게 조언해 줄 세컨드도 필요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의 코치가 왜 굳이 심판까지 됐는지 궁금했다. 그는 코치이자 세컨드로서 더 정확하게 지도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다음 대회 따위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도 혼자 다음을 내다봤다. 좋은 세컨드란 눈앞에 승패가 아니라 다음 기회를 열어주는 사람이라고 말과 함께. 그게 내가 기나긴 반성문을 써야 했던 이유였다. 선수가 아닌데 선수처럼 훈련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과하게 몰입하고 없는 체력을 쥐어짜며 노력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순전히 호기심에 발을 담근 아마추어 대회에서 나는 의도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세계가 확장되는 걸 경험했다.

안전하고 협조적인 도장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얼떨결에 체득했고 그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됐다. 그러자 나에게는 다음 기회가 필요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 세계가 진정으로 흥분되고 재미있고 더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건 인간은 오롯이 혼자일 수 없고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다. 중죄인에게도 법정대리인을 내세울 권리가 주어지는 것도 그래서다. 뛰어난 선수는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외로움마저 이겨내며 지독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수련은 길고 고되다. 경쟁은 그보다 더 살벌하다. 그리고 삶의 험난한 여정이 모두 그렇듯 그 안에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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