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초월 ‘매너’의 존재 이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영국 젠틀맨까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의 변천 역사 재조명
“콧구멍에는 어떤 점액질 덩어리도 없어야 한다. 역겹기 때문인데,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그것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모자나 옷으로 콧물을 훔치는 일은 촌뜨기나 할 일이다. … 만약 두 손가락을 이용해 코를 풀었을 때는 일부가 바닥에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 즉시 발로 밟아 땅에 묻어야 한다.”
연세대 사학과 설혜심 교수는 신간 ‘매너의 역사’에서 에라스뮈스의 저서가 혁명적이라고 평가한다. 몸짓을 통제하는 개인의 행위주체성을 중시하고 예법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사소통 양식이 필요하던 때에 에라스뮈스가 적절하게 대응했기에 이 예절론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성공할 수 있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눈치 없는 사람’의 특징으로 ‘아주 바쁠 때 의견을 물으러 온다’거나 ‘긴 여행에서 방금 집으로 돌아온 상대방에게 산책하자고 한다’를 예로 든다. ‘외국에서 온 친구가 극장표를 가져왔을 때 함께 공연장에 가면서 자기의 표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며, 다음날 심지어 자기 아들들과 그들을 돌보는 노예까지 데리고’ 오는 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 기를 쓰고 주인 옆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은 ‘작은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칭한다. 상당수 행태가 오늘날 ‘밉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양 매너의 이론적 시원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실천적 지혜를 통해 실생활로 이어지는 지식을 강조했다. 이 책은 서양 매너에서 중요한 원칙이 되는 세 가지 개념인 중용, 자제력, 친애(필리아·우애)를 다룬다.
영국사를 전공한 저자는 서양,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매너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영국은 근대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매너를 모델로 삼아왔다. 영국이 프랑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폴라이트니스’라는 독자적인 개념을 세우게 된 건 18세기쯤이다. 국력 성장으로 국가적 자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자신감에 찬 영국인들은 자유, 소탈한 자연스러움, 편안함을 매너의 핵심 가치로 봤다.
이런 영국식 매너는 산업화로 신흥부자가 탄생하자 반동적으로 변한다. 기존 상류층은 까다로운 예의범절로 우월성을 지키려 했다. 신흥부자가 침범할 수 없도록 사교계와 회원제 클럽을 만들고 표피적인 양식에 집중한 세세한 규칙을 에티켓으로 내세운다.
19세기에는 소비사회가 발달하면서 쇼핑 에티켓, 전문직의 에티켓 등이 등장한다. 새뮤얼 비튼은 1875년 작 ‘에티켓의 모든 것’에서 상점 주인에 대해 “부자 손님에게는 안달복달하면서 유난을 떨고 굴종적이며, 가난한 손님에게는 무례하고”라고 꼬집는다. 오늘날 논란이 되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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