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밸류업 공시 무소식에 답답한 증권가
정부가 기업 가치제고(밸류업) 계획 공시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공시(자율+안내) 상장사 수가 50곳으로 늘었다. 한 달에 10개 기업씩 밸류업 공시를 한 셈이다. 다만 예고가 아닌 실제 계획을 공시한 기업 수만 따지면 여전히 21개사에 불과하다. 한 달에 4개꼴이다.
금융당국과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밸류업 가이드라인 설계 당시 가장 열심히 의견을 냈던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가 아직도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는 모습에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사업의 미래에 불안함을 느낀 외국인이 33거래일 연속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는데, 이럴 때일수록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 아직 더디지만… 현대차·LG전자 등 대기업 공시 속속
26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정보시스템(KIND)에 따르면 이달 24일 기준 밸류업 계획을 자율공시한 상장사는 23개사다. 밸류업 계획을 내놓겠다고 예고(안내공시)한 기업(29개사)까지 합치면 총 52개 상장사가 밸류업 관련 공시를 했다. 올해 5월 27일 KB금융의 첫 안내공시 이후 5개월 동안 월평균 10개 기업이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협조한 셈이다.
사실 정부가 당초 예상한 것보다는 느린 속도다. 당국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했는데, 초반에는 KB·메리츠·우리·신한 등 주로 금융지주만 밸류업 공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KT&G, 현대차, POSCO홀딩스, 기아, LG전자, SK텔레콤 등 각 산업 분야 시총 상위주가 서서히 동참하기 시작한 건 8월 이후부터다.
이 중 지난 8월 28일 밸류업 계획을 자율공시한 현대차는 현행 분기 배당액을 주당 2000원에서 2500원으로 늘리고, 연간 배당액을 최소 1만원으로 제시했다. 또 향후 3년간 총 4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했다. 이달 22일 자율공시한 LG전자는 지난해까지 20%였던 배당성향을 25%까지 확대하고, 자사주 소각과 추가 자사주 매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의 뜨뜻미지근한 초기 반응에 난감했던 금융당국과 거래소도 주요 대기업의 밸류업 참여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거래소는 지난 8월 10대 그룹 재무 담당 임원을 불러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당부한 바 있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기업 담당자들과 접촉하며 밸류업 공시를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 삼성전자 공시 기다리는 당국… “내부 검토 중”
금융당국은 그러나 기업의 밸류업 공시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려면 다른 기업보다도 삼성전자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총의 20%를 차지하는 대장주다. 지난 5개월 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 중 밸류업 공시에 나선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거래소가 선정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 100종목에 포함됐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주요 상장사 의견을 많이 들었는데, 그때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면서 관심을 보인 기업이 삼성전자였다”며 “그래서 당연히 밸류업 공시도 가장 먼저 할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다”라고 했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내년도 사업계획이 구체화하는 연말쯤 삼성전자도 밸류업 공시에 나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녹록지 않은 반도체 사업에 신음 중인 삼성전자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밸류업 공시가 우선순위는 아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고, 굳건했던 D램도 중국 기업의 빠른 추격을 받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33거래일 동안 삼성전자 주식을 13조원가량 팔았다. 역대 최장 순매도 기록이다. 이 여파로 주가는 6만원이 진작 깨졌고, 5만5000원대도 위태롭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인뿐 아니라 모든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라며 “위기감이 커진 이런 때일수록 삼성전자가 명확한 미래 비전을 제시해 주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역시 밸류업 공시에 동참할 계획이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밸류업 관련) 검토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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