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영권 방어장치 필요하다

전재호 산업부장 2024. 10. 26.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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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납), 아연과 같은 비철금속(철 이외의 금속)을 생산·판매하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고려아연 지분을 최대 14.61% 추가로 취득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려고 했으나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로 유통 물량을 걷어가면서 지분을 5.34% 취득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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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납), 아연과 같은 비철금속(철 이외의 금속)을 생산·판매하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고려아연 지분을 최대 14.61% 추가로 취득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려고 했으나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로 유통 물량을 걷어가면서 지분을 5.34% 취득하는 데 그쳤다. 양측은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경영권을 놓고 공방을 벌일 예정이다.

MBK는 고려아연 공개매수가 끝난 직후 “오늘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라며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했다.

이와는 다른 의미로 MBK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는 재계에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선 시가총액 10조원 이상인 대기업도 사모펀드의 공격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동안은 주로 외국계 자본이 적대적 M&A(인수합병)를 시도했으나 국내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가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국내 상장사는 총 2838개로 전날 종가 기준 시가총액 10조원 이상인 곳은 47개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사모펀드의 사정권이란 얘기다.

또 적대적 M&A 시도에 기업이 자사주로 방어하는 전례가 생기게 됐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을 금지해달라며 두 차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이후 사모펀드발(發) 적대적 M&A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간 국내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이란 비판을 받을까 국내 기업과의 분쟁을 꺼려왔으나 MBK가 지난해 한국앤컴퍼니를 포함해 두 차례나 대기업을 상대로 적대적 M&A를 시도하면서 이런 인식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포이즌 필(poison pill·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기존 주주들에게 싼 가격으로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나 차등의결권(주식의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를 달리하는 제도)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례처럼 자사주를 매입해 상대방이 지분을 못 갖도록 하는 게 유일한 방어책인데, 앞으로는 이마저도 힘들어질 전망이다. 정부와 야당이 기업의 자사주 활용을 점점 더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법과 시행령을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산 뒤 나중에 비싸게 되팔아 돈을 번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가지면 긴 안목으로 경영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내외 여러 보고서를 봐도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에 개입한 기업은 단기간에 기업가치가 올라도 장기적으로는 하락하고 직원 수와 연구개발(R&D) 투자금액은 감소한다. 상식적인 결과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모펀드가 삼성전자를 경영했다면 이런 결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부와 야당이 자사주 규제를 강화하는 이유는 기업 오너가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꼼수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적대적 M&A와 같은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자사주 활용을 허용해 줄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도입도 검토가 필요하다. 상속세율이 최대 60%에 달하는 한국에서는 삼성전자나 SK그룹도 시간이 흐르면 적대적 M&A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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