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땐 깨끗한 콧구멍, 18세기엔 날씨 얘기 않는 게 매너

유석재 기자 2024. 10. 26.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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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교수가 쓴 ‘서양사 속 예의’

매너의 역사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672쪽 | 3만8000원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 굳이 집주인 아이들을 옆에 앉히고 “아이고~ 이 녀석 그냥 아빠랑 붕어빵이네”라며 박박 쓰다듬는다. 제사를 지내는 집에 가서 대출금 이자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남의 집 고용인이 질책당하는 걸 보고 “나도 저런 적 있는데 글쎄 그러고 났더니 극단적 선택을 했지 뭐예요”라고 내뱉는다. 중고 거래에서 더 비싸게 팔기 위해 이미 팔기로 한 물건을 취소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사악하다고 여기는 정치인을 ‘자유의 신봉자’라고 추켜세운다.

이들은 누구인가? 23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학자 테오프라스토스가 쓴 예의범절 서적 ‘성격의 유형들’에 등장하는 꼴사나운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21세기에도 흔히 볼 법한 이 ‘진상’들을 나열한 것은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자”는 반면교사의 뜻이었다.

이 책을 서점에서 대충 훑어본 독자는 나중에 좀 놀랄 수 있다. 예의범절의 행동 지침이란 특별한 주제로 서양사 전체를 관통하는 600여 쪽 분량의 연구서를 국내 학자가 썼다는 것 때문이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소비, 여행, 온천, 지도, 추리소설처럼 20~30년 전 같았으면 지도교수에게 혼났을 만한 신선한 주제의 역사책을 써 왔다. 서양 예법 자료를 100여 종 모으긴 했지만 ‘이런 주제로 책을 쓰면 꼰대 같지 않을까’란 생각에 쓰길 주저했는데,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무례’ ‘배려’ ‘품격’ ‘천박’ 같은 단어들이 회자되는 걸 보고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18세기 영국 ‘젠틀맨’의 인사법. 젠틀맨은 매너가 몸에 배어 그 자체로 편안함이 느껴지는 사람으로, 모든 행동거지가 어색하지 않고 우아해야 했다. /휴머니스트

특정 예의범절과 금기가 모든 시대에 유효한 것은 아니며, 시대에 따른 변화와 부침을 겪었다. 로마 시대 키케로의 데코룸(decorum)은 올바른 정신 상태에 따른 적절한 행동거지를 일컫는 말로 ‘매너’와 거의 같은 개념이었다.(“남성은 강건함에 어울리지 않는 장식과 행동을 삼가라.”) 중세 말의 쿠르투아지(courtoisie)는 궁정 예절이었다.(“누군가 말을 걸면 침착한 눈길로 똑바로 바라보고, 주의 깊게 잘 들어라.”)

르네상스 때 나타난 시빌리티(civility)는 새로운 시민 사회의 예의범절이었다.(“눈은 존경스럽게 떠야 하고, 콧구멍에는 어떤 점액질 덩어리도 없어야 한다.”) 명예혁명을 거치고 나서 18세기에 등장한 폴라이트니스(politeness)는 정중하고 세련된 영국식 매너로, 소탈하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농업·해운 등 날씨에서 영향 받는 사업이 많기 때문에 모임에서 날씨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19세기의 에티켓(etiquette)은 형식적이고 양식화된 예절 바른 행동이었다.(“아침에는 단순하고 큰 반지를 끼는 것이 좋고 팔찌는 착용하지 말라.”)

책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사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지만, 키케로가 사회 엘리트의 예절이라는 계급성을 중시한 것은 ‘예(禮)는 군자(君子)에게 미치며 소인(小人)에게는 미치지 않는다’는 옛 유교 예론을, ‘태연하고 자연스럽고 무심한 듯 예절을 행해야 품격이 지켜진다’는 르네상스의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개념은 노장(老莊) 사상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예법의 역사는 철학과 문학뿐 아니라 사회경제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영국에선 산업과 무역의 발달로 신흥 중간층이 부를 축적하자 지나치게 자잘한 에티켓 지침들이 출현했는데, 저자는 이를 기존 귀족층이 중간층과의 경계를 설정하기 위한 일종의 ‘반동’으로 본다. 하지만 에티켓은 결국 두 계급의 절충과 화합으로 나아가게 됐다는 것이다.

20세기 이후 매너는 계급을 벗어나 오직 개인의 행동에 의해 사회적 지위를 가늠케 하는 지침이 됐다. 또한 기차와 비행기, 직장 생활, 베이비 샤워, 이혼 공지까지 복잡한 사회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분화했다. “제발 빨리 해치우라는 등 재촉하는 명령은 좋지 않다” “연인이 절정에서 내뱉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섹스 에티켓’도 출현했다.

저자는 예법의 역사에서 지배 계급의 위선을 비판하기보다 ‘왜 인류에게 매너가 필요했는가’란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다. 정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있었다. “인간은 좋은 것을 추구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고, 예의 바른 행동이야말로 좋은 것이다.” 매너는 어느 시대든 인간을 인간답게, 품격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저지르는 것을 경계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제력’ 개념은 지금도 통용될 수 있지 않은가? 무례한 사람들에게 상처 입은 독자라면 책 속 모든 시대에 늘 등장하는 무뢰배들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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