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프랑켄슈타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어머니
작품 속 괴물만큼이나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탄생 과정이 유명하다. 1816년 여름, 젊은 남녀 네 명이 무서운 이야기 쓰기 내기를 벌인다. 이 내기의 결과로 불과 18세였던 메리 셸리가 바로 최초의 공상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메리를 짝사랑했던 존 윌리엄 폴리도리는 최초의 흡혈귀 소설로 불리는 ‘뱀파이어’를 썼다.
간혹 이 집필 배경에 각주처럼 ‘그런데 메리 셸리는 최초의 근대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작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이다’라는 문장이 붙곤 한다. 최초, 최초, 최초…. 자연스레 어머니의 ‘최초’가 딸의 ‘최초’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한데 그 작업이 쉽지 않다. 어머니 메리가 딸 메리를 낳자마자 바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이 모녀의 삶을 번갈아가면서 서술한 ‘메리와 메리’ 앞부분을 읽을 때까지 다소 시큰둥했다. ‘영리한 기획이고 글도 참 잘 썼는데,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두 사람을 혈연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엮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전체 782쪽인 두툼한 책의 100페이지 즈음부터 읽는 속도가 무섭게 빨라졌다. 책장을 덮을 때에는 가슴이 뻐근했다.
이 책에서 두 메리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 단단하게 이어진다. 어떤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정신을 지닌 어머니와 딸이 시간을 넘어 손을 잡고 온갖 부조리한 인습과 차별에 맞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두 사람이 껴안고 함께 우는 것 같다. 열정적이고도 섬세한 두 영혼이 분투하다 상처 입는 모습을 저자가 생생하게 그릴 때 독자도 울고 싶어진다.
저자는 두 메리를 무오류의 전사로 그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어머니와 딸은 질투에 휩싸이고, 히스테리에 빠지며, 헛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해지기도 한다. 고매한 이상과 결연한 의지에 그런 인간적 흠결들이 섞여, 저자가 그린 두 인물의 초상은 숨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처럼 생기를 뿜는다. 그 밑바탕에는 방대한 사료 취재가 있는데, ‘기록의 재구성과 역사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도 무척 흥미롭다. 이 평전 자체도 그 전쟁 최전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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