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 기독교인은 왜 ‘부도덕한 트럼프’ 지지할까

곽아람 기자 2024. 10. 2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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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美 시사지 애틀랜틱 기자
4년간 교회 모임·정치 유세 등 취재

나라, 권력, 영광

팀 앨버타 지음|이은진 옮김|비아토르|724쪽|3만8000원

원제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에서 따왔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 기자로 복음주의(evangelism) 목사의 아들이자 개신교 신자인 저자가 4년간 미국 곳곳의 교회 모임, 정치 유세, 연례 총회 등을 취재해 쓴 역작이다. 복음주의자는 낙태·성소수자 문제 등에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는 미국의 백인 기독교인 집단으로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이기도 하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빌 클린턴 등 공직자에게 엄격한 공적 기준을 적용해 온 종교적 우파가 왜 그리스도인의 이상과 거리가 먼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가’라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부도덕한 사생활은 차치하더라도,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비판자들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고, 상대 후보에게 악랄한 인신공격을 퍼부으며, 한 번도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어 본 적이 없다고 자랑하고,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 모범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복음주의자들이 마련한 ‘트럼프를 위한 변명’은 그가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라는 것. 2016년 6월 뉴욕에 집결한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함이 있는 인물을 사용하는 오랜 전통을 잇는 새로운 인물’로 트럼프를 소개했다. 성경에는 다윗과 솔로몬 등 중대한 결함이 있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예시가 가득한데, 복음주의자들은 트럼프를 이들과 비견했다.

2020년 1월 3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트럼프를 위한 복음주의자’ 캠페인 행사에서 교계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트럼프가 복음주의자들의 구심점이 된 배경으로 점점 줄어드는 신도 수, 박해받고 있다는 피해망상 등을 든다. 권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버락 오바마가 무슬림이라는 음모론, 팬데믹 때의 정부 규제가 신이 부여한 자유를 침해한다는 그릇된 믿음, 이민자 차별 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처음부터 극단주의 정치 세력이었던 건 아니다. 온건 보수를 지향했던 이들은 1980년 대선을 기점으로 로널드 레이건을 지지하며 결집했다. 197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카터와 민주당을 상대로 여러번 큰 역전승을 거뒀는데, 그중 세 번은 풀뿌리 낙태 반대 운동 덕분이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자 수백만명이 오직 낙태 정책 하나만 보고 투표하는 단일 유권자가 되었다. 2022년 6월 나온 돕스 판결이 낙태를 합법화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자,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하나님이 인정했다며 환영했다.

올해 대선에서도 역시 낙태권이 공화당과 민주당 간 표심을 가를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지만, 저자는 “돕스 판결은 낙태라는 재앙을 종식하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돕스 판결 이후 낙태에 대한 연방 차원의 규제가 없어지자 몇몇 주는 로 대 웨이드 판결보다 더 진보적인 법안을 추진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더 많은 낙태가 이루어졌다. 2023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더 완화된 낙태법을 지지하는 공화당 지지자의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낙태 반대 운동이 공공의 논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까닭은 뭘까. 저자는 “생명을 옹호한다”는 메시지가 그들의 다른 정치적 행위와 일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신념으로 선거 활동에 나선다면, 왜 낙태를 반대하는 데서 멈추는가? 난민 배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배고픈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급식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것은? 2020년에 총기가 미국 어린이 사망 1위가 된 것은?”

저자는 현재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신이 아닌 미국을 숭배하는 ‘국가 우상숭배 현상’을 지적한다. 2016년 대선 때 복음주의자들의 공화당 투표를 독려했던 채드 코널리는 말한다. “미국은 전 세계를 비추기 위해 산 위에 세운 빛나는 도시입니다. 여기 들어오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좀 보세요. 세계 인구의 4%인 우리가 전 세계 선교 기금의 80%를 후원합니다. 적이 우리를 무너뜨리고 분열시키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캠페인이 복음주의자들에게 한 줄기 ‘복음’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대하고 치밀한 취재가 돋보이는 책.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저자는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정치의 돌파구 역할을 할 메시지로 성경의 이 구절을 제시한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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