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친환경 연료쓰고 폐수 재활용…K패션기업 기술, 베트남을 바꾼다

오유진 2024. 10. 26.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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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친환경 공장 견인하는 한국기업
글로벌 기업들의 공장이 몰려 있는 베트남의 요즘 최대 고민은 환경오염이다. 베트남은 공장이 내뿜는 매연 등으로 최악의 대기오염 국가로 손꼽힌다. 수질 상태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게 다름 아닌 한국 섬유·의류 제조기업들이다. 친환경 보일러와 폐수 재활용 시스템 등을 선제 도입하면서 베트남의 탄소 중립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한세실업 TG법인 1공장의 다림질 작업 라인. 이 공장의 불량률은 0.0125%로 1만장당 1장꼴이다. [사진 한세실업]
17일(현지시각) 베트남 동남부 빈프억성에 위치한 한세실업 C&T Vina 3공장. 12월 정식 가동을 앞두고 시범 운영이 한창이다. 이곳은 의류 브랜드인 갭·칼하트 등에 납품할 원단을 생산하는 공장인데, 베트남의 여느 공장에서는 보기 힘든 설비가 있다. 캐슈너트와 왕겨, 톱밥과 같은 바이오매스(식물·미생물 연료)로 가동하는 보일러다. 보일러는 염색 등 원단 생산의 필수 설비인데, 이 보일러는 100% 바이오매스만 사용한다. 베트남 내 섬유 공장이 100% 친환경 연료만 사용하는 건 C&T Vina 3공장이 처음이다. 바로 옆의 C&T Vina 1·2공장도 설비 교체 등을 통해 친환경 연료 사용률을 75%까지 끌어 올렸다.
한세실업, 친환경 설비 311억원 투자
시범 가동 중인 한세실업 C&T Vina 3공장의 바이오매스 보일러실. [사진 한세실업]
이 외에도 3공장에는 기존 제품 대비 물 사용량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염색기 등을 갖추고 있다. 이현승 C&T Vina 공장장은 “기존 염색기 대비 화학약품이 10% 이상 절감되며, 속도도 1.8배 이상 빠르다”며 “설비 비용이 기존 제품보다 두 배 이상 비싸지만, 환경오염 물질 감소 등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세실업은 이 같은 친환경 설비 등을 통해 2027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60% 이상 줄이고, 용수와 전기도 각각 50%, 15% 절감한다는 목표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대기오염이 심각한 베트남에 한국 기업들이 친환경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한세실업을 비롯해 효성티앤씨·영원무역 등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있는 기업들이 설비 교체 등을 통해 매연·폐수 등 오염 물질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2001년 베트남에 생산법인을 설립한 한세실업은 최근 3년간 친환경 설비 구축 및 자동화를 위해 2400만 달러(약 311억원)를 투자했다. 효성티앤씨는 올해 3월 10억 달러(약 1조3700억원)를 친환경 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에 투자했고, 영원무역은 공장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는 등 친환경 시스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자동으로 원단을 운반하는 무인 운반 로봇. 오유진 기자
C&T Vina 1·2·3공장의 경우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800만t의 왕겨 등을 연료로 사용함으로써 석탄 대비 탄소배출량을 92% 가량 줄일 수 있다. 원단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마실 수 있는 수준으로 정수하는 시스템(RO System)도 갖추고 있다. 2공장에서 가동 중인 정수 시스템은 하루 최대 1500t을 정수할 수 있는데, 정수된 물을 염색에 재사용해 폐수 배출량을 줄인다. 김철호 C&T Vina 대표는 “향후 C&T Vina 전 공장에 정수 시스템을 도입해 하루 최대 4500t을 정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한국 기업들이 공장의 친환경화를 서두르는 건 베트남의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기업 IQAir의 ‘세계 대기질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초미세먼지(PM2.5) 농도만 해도 기준치보다 9배 이상 높다. 이에 베트남 정부도 2022년 환경 보호법을 개정해 환경관리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하는 등 친환경 공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베트남 정부의 움직임에 한국 기업들이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문제는 생산 비용이다. 친환경 설비는 일반 설비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친환경 설비를 갖추는 데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생산 시스템 고도화 등을 통한 원가 절감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한세실업의 경우 봉제 단계에서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생산 비용을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한세실업 전체 생산량의 62%를 담당하는 베트남 TG법인은 물류 자동화 로봇인 AGV,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햄스(HAMS), 자동 포장기기인 오토박싱머신을 도입해 생산 비용을 줄이고 있다. 김신일 한세실업 해외팀장은 “생산성이 10%포인트 오를 때마다 공장 비용은 약 5~7%포인트씩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효성티앤씨·영원무역도 친환경 앞장
생산 비용을 봉제 단계에서 상쇄할 수 있는 건 베트남 내 생산시설을 수직계열화(생산품의 생산 전 과정을 통합 운영)한 덕분이다. 한세실업은 2014년 베트남 내에서 편직(編織)부터 원단 염색, 봉제, 제조를 수직계열화해 의류 생산에 최적화된 공정을 갖췄다. 조소정 키움증권 연구원은 “의류 브랜드들의 ESG 경영 확대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한세실업의 경우 수직계열화, 자동화 설비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실제로 최근 H&M·타겟과 같은 브랜드들은 원료부터 생산·유통 전 분야에 걸쳐 친환경 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 인증 컨설팅 기업인 켐셈의 추미경 대표는 “일부 브랜드는 친환경 인증을 받지 않는 공장과는 계약조차 않는 분위기”라며 “기후 위기가 심화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의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공장들은 폐수와 유해물질 배출과 관련해 고객인 의류 브랜드들의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의류산업 역시 환경친화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베트남에서의 친환경 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베트남 정부가 올해 초 생산자·수입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생산자책임확대(EPR) 제도를 확대 시행한 데다 글로벌 고객사인 미국·유럽 등지의 의류 브랜드들이 탄소 배출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서다. 추 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대내외적 요구사항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원료, 소재, 유통, 품질관리까지 다방면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며 “친환경은 산업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말했다.

호찌민(베트남)=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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