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배구조 재편 재추진…신사업·주주 두 토끼 다 잡는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21일 이사회를 열어 변경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7월 두산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계획에 나왔던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변경됐다. 주주 목소리를 반영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식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분할합병을 마치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4.33주를 받게 된다.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의 분할합병을 추진하는 데는 그룹의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실리적 계산이 깔려 있다. 우선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구조 개선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9조7589억원의 매출과 1조389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알짜 회사이지만, 700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이 있다. 이게 장부상 고스란히 두산에너빌리티의 부채로 잡혀 있다. 따라서 두산밥캣을 떼어내면 차입금 7000억원이 줄어든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분할합병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신설 법인에 7000억원의 차입금을 넘기면 최소 1조원의 신규 투자 여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 빅테크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미국의 아마존은 최근 SMR 개발에 5억 달러(약 6845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로서는 신규 투자로 고객사를 확대해 추가 수주를 노릴 절호의 기회다. 박상현 대표는 “미국 빅테크의 SMR 투자가 본격 확대되고 있어 생산 능력을 고려해 세웠던 ‘5년간 60기 이상의 SMR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더 나은 주주환원이 가능하다는 게 두산그룹 측의 입장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의 시너지 효과도 노린다. 두산로보틱스는 2030년 1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농업·건설 분야 로봇 시장 선점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두산밥캣과 고객사가 겹친다. 따라서 분할합병하면 두산밥캣의 미국·유럽 영업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두산밥캣으로서도 두산로보틱스의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개발 경쟁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가 클 전망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간 업종 구분이 없이 혼재됐던 사업 부문을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재조정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두산그룹은 앞서 핵심 사업을 ▶클린 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정했다. 여기서 클린 에너지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스마트 머신은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이 각각 주도하는 식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함으로써 사업 부문 혼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존 계획에 반대했던 주주들과 금감원을 설득해야 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분할합병 비율을 상향 조정했다는 점에서 주주 친화적 측면이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주주 측 입장을 강조해 온 윤태준 기업지배연구소장은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기존 3주에서 4주로 1주 정도 더 받게 되는 것이라 주주 혜택 증가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들의 반발 여론에 힘입은 행동주의펀드의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산밥캣 지분 1%를 보유한 국내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두산밥캣에 포괄적 주식 교환에 대한 완전한 철회 계획 공표, 지배주주인 ㈜두산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회를 만들 것 등을 요구 중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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