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배구조 재편 재추진…신사업·주주 두 토끼 다 잡는다

2024. 10. 26. 01: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캇 박 두산밥캣 대표(부회장, 오른쪽)가 지배구조 재편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 17위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재편을 다시 추진한다.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분할해 자회사 두산밥캣을 지배하는 신설 법인을 만들고, 이 법인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을 추진키로 했다. 문제가 됐던 분할합병 비율은 상향 조정했다. 두산그룹은 2020년부터 이어진 고강도 구조조정으로 성장세를 회복 중인 가운데 지배구조 재편으로 방점을 찍는다는 목표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21일 이사회를 열어 변경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7월 두산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 계획에 나왔던 1대 0.031에서 1대 0.043으로 변경됐다. 주주 목소리를 반영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식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분할합병을 마치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4.33주를 받게 된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을 분할합병 비율에 반영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두산그룹은 7월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만든다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분할합병 비율 등을 놓고 거세게 반발한 데다, 금융감독원이 두산그룹에 너무 유리한 방식이라며 반려했다. 이에 두산그룹은 계획을 중단한 데 이어 8월에는 당초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분할합병 자체는 계속 추진해왔다.

두산그룹이 두산밥캣의 분할합병을 추진하는 데는 그룹의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실리적 계산이 깔려 있다. 우선 두산에너빌리티의 재무구조 개선이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9조7589억원의 매출과 1조389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알짜 회사이지만, 700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이 있다. 이게 장부상 고스란히 두산에너빌리티의 부채로 잡혀 있다. 따라서 두산밥캣을 떼어내면 차입금 7000억원이 줄어든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분할합병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신설 법인에 7000억원의 차입금을 넘기면 최소 1조원의 신규 투자 여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최소 1조원’은 두산에너빌리티가 큐벡스 등 비영업용 자산을 ㈜두산에 매각해 추가로 최대 5000억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데서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자금으로 세계적으로 고성장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사업 투자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SMR 시장은 지난해 8조5000억원에서 2035년 640조원으로 규모가 75배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SMR은 대형 원전 대비 사고 위험성이 100분의 1일 만큼 안전한 기술”이라며 “초기 투자비가 적고 건설 기간이 짧아 경제성도 좋기 때문에 세계적 탈(脫)원전 추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빅테크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미국의 아마존은 최근 SMR 개발에 5억 달러(약 6845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로서는 신규 투자로 고객사를 확대해 추가 수주를 노릴 절호의 기회다. 박상현 대표는 “미국 빅테크의 SMR 투자가 본격 확대되고 있어 생산 능력을 고려해 세웠던 ‘5년간 60기 이상의 SMR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더 나은 주주환원이 가능하다는 게 두산그룹 측의 입장이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의 시너지 효과도 노린다. 두산로보틱스는 2030년 1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농업·건설 분야 로봇 시장 선점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두산밥캣과 고객사가 겹친다. 따라서 분할합병하면 두산밥캣의 미국·유럽 영업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두산밥캣으로서도 두산로보틱스의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개발 경쟁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가 클 전망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간 업종 구분이 없이 혼재됐던 사업 부문을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재조정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두산그룹은 앞서 핵심 사업을 ▶클린 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소재 등 3대 부문으로 정했다. 여기서 클린 에너지는 두산에너빌리티가, 스마트 머신은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이 각각 주도하는 식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함으로써 사업 부문 혼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존 계획에 반대했던 주주들과 금감원을 설득해야 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분할합병 비율을 상향 조정했다는 점에서 주주 친화적 측면이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주주 측 입장을 강조해 온 윤태준 기업지배연구소장은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당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기존 3주에서 4주로 1주 정도 더 받게 되는 것이라 주주 혜택 증가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주들의 반발 여론에 힘입은 행동주의펀드의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산밥캣 지분 1%를 보유한 국내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는 두산밥캣에 포괄적 주식 교환에 대한 완전한 철회 계획 공표, 지배주주인 ㈜두산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회를 만들 것 등을 요구 중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