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초월하는 부…해악을 막으려면

이영희 2024. 10. 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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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제한선
잉그리드 로베인스 지음
김승진 옮김
세종서적

2022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테슬라 소유주 일론 머스크의 총재산 추정액은 2190억 달러.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2조원, 일반인에겐 상상조차 어려운 숫자다. 우리가 20세부터 65세까지 45년간 매주 50시간씩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 만큼의 재산을 모으려면 시간당 187만1794달러(약 25억8000만원)를 벌어야 한다. 이 역시 상상 불가다.

네덜란드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저자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왜 남들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돈을 버는 ‘슈퍼 리치’들이 존재하는가. 이렇게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한 개인이 제한 없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소비하는 것은 윤리적이고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떤 이들이 상상을 초월한 부를 갖는 것은 사회에 큰 해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극단적 부의 집중은 사회 통합을 해치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며, 민주주의와 인간의 도덕적 원칙을 위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하여 내려진 결론이 개인이 가진 부에 ‘상한선’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 이른바 ‘제한주의(Limitarianism)’다.

그럼 제한선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각 나라의 제도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정치적 제한선’으로 자산 기준 1000만 달러(약 137억원), ‘윤리적 제한선’으로 100만 달러(약 13억7000만원)를 든다. 정치적 제한선이란 국가가 조세 시스템으로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하고, 윤리적 제한선이란 개인이 양심의 가책 없이 정당화할 수 있는 주관적인 부의 규모를 뜻한다.

공산주의로 가자는 이야기냐고? 저자는 이런 반론들에 다양한 데이터와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실현 가능성과는 별도로,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생각의 전환을 촉구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책이다. 순자산 1000만 달러 이상인 부자의 수가 세계 10위인, 반면 빈곤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턱없이 약한 한국에는 ‘더 매운 자극’이 될 법하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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