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복음주의는 어떻게 트럼프와 결합됐나
팀 앨버타 지음
이은진 옮김
비아토르
국외자의 눈으로 미국 정치를 이해하기란 쉽지는 않다.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보수 성향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트럼프 지지 현상도 그렇다. 교인이 아닌 눈에도 그의 언행은 성경의 가르침과 멀어 보이는데, 미국 복음주의 유권자의 81%가 2016년 대선에서 그를 지지했다.
트럼프와 비교하자면, 그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는 자타공인 이름난 신앙인. 펜스는 “저는 기독교인이자 보수주의자이며 공화당원”이란 말로 늘 연설을 시작했다. 한데 2021년 1월,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공격 직후 펜스는 트럼프와 갈라섰고,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조롱거리가 됐다. 트럼프는 “행동할 용기가 없었다”고 그를 비난했고, 관중들은 펜스의 이름에 야유를 보냈다. 펜스가 이전에 숱하게 연사로 참여했던 복음주의 행사에서 지은이가 목격한 일이다.
과연 뭐가 문제일까. 지은이는 이후 4년간 복음주의 목회자들과 관련 기관, 여러 집회와 행사 등을 취재해 이 책을 썼다. 책에 따르면 복음주의는 개혁파 프로테스탄트를 가톨릭교도와 구분하기 위해 쓰던 표현에서 비롯된 말. 정치적 성향의 운동으로 변모한 건 1980년대였다. 책에도 그 삶이 상세히 나오는 제리 팔웰(1933~2007) 목사가 이끈 모럴머조리티 운동이 계기였다. 지은이는 ‘복음주의자’가 점차 보수 기독교인, 나아가 공화당 지지 백인 보수주의자와 동의어가 됐다고 전한다.
트럼프 지지를 이런 흐름으로만 설명하긴 힘들다. 앞서 오마바 대통령 취임 이후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는 ‘미국에 나락에 빠졌고’ ‘기독교가 공격받고 있다’는 식의 인식과 부추김이 증폭됐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자 많은 기독교인이 “당연히 우려했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그동안 종교적 우파는 공직자에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대통령 시절 성추문을 일으킨 클린턴을 맹공했다.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 않았다. 지은이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단점을 포용하는 새로운 전략, 다시 말해 그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불완전한 도구”로 제시하는 전략을 썼다고 전한다.
사실과 다른 주장, 성경을 왜곡한 인용 등을 꼼꼼히 지적하며 지은이는 직접 만나고 들은 목회자·정치인의 말, 교회·집회의 분위기를 상세히 전한다. 주기도문에서 제목을 인용한 이 책 첫머리에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력과 영광은 ‘이 세상’의 상응하는 어떤 것과도 결코 비교할 수 없음에도, 너무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려다 교회에 파괴적 결과를 불렀다고 비판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정치 서적으로는 지나치게 종교적”이고 “기독교 서적으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면서도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새로운 창”을 열어준다는 옮긴이 말에 공감하게 된다.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종교화로 불릴 만한 현상과 문제는 미국만의 일은 아닐 터. 미국 건국 주역들이 신정정치를 극도로 경계했다는 지적, 트럼피즘이 ‘시민종교’가 되고 미국이 ‘우상’이 되고 있다는 분석과 비판도 눈에 들어온다. 원제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 American Evangelicals in an Age of Extremism.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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