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이자에 수수료에, 은행은 ‘대박’

황정일 2024. 10. 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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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신한은행이 어제 중도상환수수료를 한시 면제한다고 밝혔다.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차주의 대출 상환 부담을 낮추고, 금융비용 부담 완화를 통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는 취지다. 은행권에서는 정부의 가계 대출 억제 기조에 맞춰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추가 대출을 막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 중도상환수수료를 낮춰 이미 나간 대출금이라도 거두어들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속뜻이야 어떻든 신한은행 고객은 당분간 수수료 없이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게 됐다.

「 중도상환수수료 4000억 예상
이자 수익 급증으로 면제 여력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사용한 뒤 상환할 때, 대출을 받은 지 3년 이내라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약정 기간까지 다 사용하지 않고 상환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해약금이다. 은행으로서는 이 해약금 수익이 적지 않다. 금리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연평균 3000억원대에 이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2022년 3년간 국내 16개 은행이 벌어들인 중도상환수수료 수익은 약 9800억원이다.

이 중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이 벌어들인 수익만 7171억원이다. 국민은행이 1749억원의 수입을 거둬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1507억원)·우리은행(1382억원)·신한은행(1349억원)·농협은행(1155억원) 순이다. 올해는 금리 인하로 인한 대출 갈아타기 바람이 불면서 수익이 4000억원대에 달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실제 5대 은행은 올 상반기 중도상환수수료로만 1928억원을 벌었다. 올해 은행에서 발생한 횡령·유용·배임 등 금융사고 금액이 1130억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물론 이 수익을 은행이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은행은 중도상환수수료로 대출을 위한 감정평가 비용과 인지세 등 각종 행정·모집 비용을 충당한다. 조기 상환으로 발생하는 자금 운용 차질에 따른 손실 비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은행들은 그동안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한 기준을 밝히지 않고 일괄적으로 똑같이 수수료율을 정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수수료율은 고정금리가 0.8~1.4%, 변동금리가 0.7~1.2%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를 없애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4·10 총선 때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러니 중도상환수수료를 없애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중도상환수수료를 지나치게 제약하면 대출금리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한 고찰과 시사점’ 보고서는 미국의 예를 들어 “중도상환수수료를 지나치게 낮추거나 없애면 은행과 차주 간 효율적인 계약 체결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중도상환수수료를 제약하자 대출금리가 오르고 대출 접근성이 하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의 가계 대출 억제 기조로 은행의 이자 수익이 급증한 만큼 신한은행처럼 한시 면제와 같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본다. KB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까지 이자로만 9조5227억원을 벌어들였다. 신한금융지주도 같은 기간 8조4927억원을 벌었다. 모두 역대 최대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들이 속속 예금금리를 내리고 있어 4분기에도 이자 장사는 순조로울 전망이다.

여유가 있어서인지 KB금융지주도 지난달 3일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했었다. 그런데 고객에게는 알리지 않았고 한 달 만인 이달 초에 슬그머니 다시 부과하기 시작했다. 일부라도 대출금을 갚으려고 했던 고객이 있었다면 좋은 기회를 날린 셈이 됐다. 정부의 가계 대출 억제 기조로 대출금리를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면,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와 같은 차주를 위해서라도 중도상환수수료를 한시 면제하는 은행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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