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오빠’ 정체보다 더 중요한 것

2024. 10. 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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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최근 가장 많이 들리는 이름은 아마도 명태균일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씨는 김영선 전 의원의 세비 절반 송금,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유력 인사들과의 관계 등이 드러나며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됐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 중 대중의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오빠’였다. 명씨가 자신을 비하하는 여권 인사를 공격하기 위해 폭로한 문자 메시지에서 김 여사는 ‘무식’하고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용서해 달라고 한다. 그 ‘오빠’가 김 여사의 친오빠라는 대통령실의 재빠른 해명은 이야기를 더욱 재미나게 할 뿐이었다.

「 명태균 폭로로 온 나라가 시끌
여론조사 조작 의혹도 불거져
여론 조작은 민주주의 파괴 범죄
철저한 수사로 진실 밝혀내야

자극적인 ‘오빠’에 가려 주목은 덜 받았지만, 더욱 심각한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다. 녹취록에는 명씨가 국민의힘 후보 경선 중이던 2021년 9월 자신이 실질적 운영자로 있는 미래한국연구소를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할 것을 지시하는 듯한 내용이 있다.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만 부풀리는 방식으로 윤 후보의 지지율이 홍준표 후보보다 높게 나오도록 했다는 것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론조사 실무 담당자였던 강혜경씨는 명씨의 지시를 받고 이미 조사가 끝난 표본을 수정해 가짜 통계를 뽑아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조작이 대선 본선에서도 이어졌다는 의혹도 있다. 명씨가 2022년 2월 당시 윤석열 후보의 지지세가 강했던 50~60대의 가중치를 높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정황도 발견된다. 대선 1년 전부터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실시된 조사 50회 가운데 윤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것은 49차례였다. 비슷한 시기 25회 실시된 갤럽 조사에선 이재명 후보가 15차례 1위를 기록했다. “내가 만든 정권, 내가 무너뜨릴 수 있다”는 명씨의 자신감이 바로 여론조사 조작 때문이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범죄행위로 규정, 엄격하게 단속하는 여론조사로 푸쉬 폴(push poll)이란 게 있다. “만약 후보 A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를 지지할 것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계속해 특정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는 방식이다. 물론 자기측 후보에 대해 긍정적인 말만 계속하기도 한다. 이름만 여론조사(poll)지, 조사를 가장한 선거운동으로 분류되는 불법행위다. 지난 대선 기간 명씨의 미래한국연구소가 의뢰한 여론조사 상당수가 푸쉬 폴일 가능성이 있다.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여론조사인 척 시민들에게 설문을 던졌다면 모두 푸쉬 폴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여론조작 행위다.

여론은 특정 주제나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총합한 것이다. 여론조사는 이를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됐으며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조사 결과는 정책을 결정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활용된다. 때로는 정당 경선에서 공동체 지도자의 후보를 결정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의견이 실제 정책 등에 반영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의 집합적 의견을 측정한 여론조사는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민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자신과 비슷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 믿는다. 여론 조작은 특정 문제나 인물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고 시민들이 공동체를 이해하는 방식을 왜곡, 이러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여론조사를 통한 여론 조작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인 이유다.

최초 폭로 이후 여권 관계자들은 명씨를 두고 허풍쟁이, 사기꾼, 겁에 질려 짖는 개 등으로 부르며 그를 공격했다. 그때마다 명씨는 김 여사와의 특별한 관계를 과시하는 증거를 공개하며 대통령 부부 및 여권 인사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최근 국정감사에선 ‘미래한국연구소와 일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윤석열, 오세훈, 홍준표, 나경원, 안철수, 이준석 등 이름만 대면 아는 유력 정치인 27명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영선 전 의원은 명씨 덕에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고 명씨 역시 자신을 ‘그림자’로 표현하며 대통령 만드는 게 제일 쉬운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각종 선거에서 그가 음지에서 세웠다는 전략이 여론 조작은 아니었는지 낱낱이 살펴야 한다. ‘오빠’의 정체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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