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32세에 일용엄니…영원한 친정엄마

유주현.황지영 2024. 10.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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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뮤지컬 ‘친정엄마’ 출연 당시의 김수미, 올해까지 15년간 열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원한 친정엄마’ 김수미가 별세했다. 향년 75세. 25일 오전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인은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당 쇼크. 고혈당 쇼크는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급격하게 상승해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으로,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을 의심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 5월 피로 누적으로 입원해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고인은 9월 홈쇼핑 방송에 출연해 건강 이상설을 부인한 바 있다. 유족 측은 김수미가 뮤지컬 ‘친정엄마’의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 최근 소송을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고인은 해당 뮤지컬에 2009년 초연부터 15년간 엄마 역으로 열연하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그러나 원작인 동명의 수필이 연극(2007)과 뮤지컬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뮤지컬 제작사가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고인은 지난해부터 출연료를 지급받지 못했지만 올 4월까지 무대에 섰고, 결국 마지막 작품이 됐다.

1970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데뷔한 김수미는 이국적이고 개성 강한 외모가 당시 한국사회가 요구하던 미적 기준과 달라 한동안 무명에 머물렀다. 그러다 불과 32세 나이에 시골 할머니 연기로 떴다. 1980년부터 방영된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을 무려 22년간 맡으며 큰 인기를 끈 것. 아들 일용이 역의 배우 박은수 보다 나이가 어렸다.

1970년 데뷔 무렵의 김수미(왼쪽)와 전원일기에서 일용 엄니를 연기하던 모습. [중앙포토]
고인의 걸출한 연기력은 일찍이 인정받았다. 1986년 MBC ‘남자의 계절’ 출연 당시 조연임에도 ‘MBC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찰진 욕 연기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영화 ‘가문의 영광’(2005) 시리즈,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2006), 영화 ‘헬머니’(2015)등을 통해 ‘원조 욕쟁이 할머니’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요리 실력으로도 정평이 나 베스트셀러 요리책을 출간하고 TV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치·게장·젓갈 등을 제조·판매하는 기업 나팔꽃F&B를 설립했고,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반찬을 아낌없이 나눠주며 ‘연예계 요리 대모’로 불려왔다.

김수미의 별세 소식에 동료와 후배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절친한 선배인 배우 김영옥(86)은 “믿을 수가 없어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 너무 큰 충격”이라며 고인에 대해 “일에 목마른 사람처럼 오늘날까지 미친 듯이 뛰어온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비롯해 ‘맨발의 기봉이’(2006)에서 모자 사이로 호흡을 맞추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던 배우 신현준은 “생신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하얀 리시안 꽃을 보내드렸다”면서 “전화로 꽃이 너무 예쁘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셔서 건강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마지막 통화가 됐다. 너무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스타를 잃었다기 보다는 가족을 잃은 것 같다.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로 가족처럼 다가오신 분이라 슬픔이 더 크다.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신 김수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애도한다”고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정창규, 딸 정주리, 아들 정명호, 며느리인 배우 서효림이 있다.

유주현·황지영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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