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세대'에게 건네는 위로‥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보랏빛 하루'

송정훈 junghun@mbc.co.kr 2024. 10.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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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근처의 한 카페에 특별한 하루가 마련됐습니다.

비건과 논비건 샌드위치, 두 종류의 주스와 커피까지, 정성이 담긴 음식들이 모두 무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오늘 하루 청년들을 위해 '무료 일일 카페'를 진행한 건데요.

한 번도 커피를 내려본 적이 없다는 어머니, 또 샌드위치를 싸는 모습이 다소 서툰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오늘 카페 운영에 나서게 된 걸까요?

"보랏빛 하루"

2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가기 전, 입구에는 '일일 카페'를 알리는 팻말이 서있었습니다.

오전 11시 오픈을 앞두고 보라색 앞치마를 두른 유족들은 샌드위치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아래 깔린 포장지 위에 빵을 놓고, 위에는 햄과 야채, 계란 샐러드를 차곡차곡 올렸습니다.

다른 한편에선 카페 직원의 도움을 받아 유족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주스를 따랐습니다.

잠시 뒤, 청년들이 하나둘 카페에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일일 카페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찾아온 이들은 물론, 이를 모르고 방문한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카페 단골로 보이는 학생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어리둥절해하며 자리를 잡자 유족들이 친절하게 다가가 "오늘 샌드위치와 음료는 무료로 제공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윽고, 청년들을 위한 샌드위치와 음료가 자리로 직접 전달됐습니다.

카페가 손님들로 꽉 차기 시작하자 어머니들의 손길도 더 바빠졌습니다.

잠시 틈을 내 음료를 담당하던 故김의현 군의 어머니 김호경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카페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오늘은 주스를 담당하고 있어서 (여유가 있긴 한데)" <음식 준비하는 건 힘들지 않으셨나요?> "어젯밤 10시까지 저희 엄마들이 다 모여서 달걀 삶고, 감자 삶고 해서 저희 손으로 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저희 아이들 같은 학생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주는 샌드위치 맛있게 먹어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음식 먹는 학생들 지켜보시니 어떠신가요?> "밤늦게까지 (준비)하느라고 되게 피곤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피곤함이 그냥 싹 날아가는 것 같고 맛있게 먹으니까 그냥 내 아이가 먹는 그런 마음으로 여기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카페 운영에 나서게 되셨나요?> "저희 아이들과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그냥 엄마의 마음으로 따듯한 음식 먹이고 싶어서 그런 취지로 엄마들이 이렇게 모였어요. 그냥 '너희들은 안전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고 지금 아름다운 세상에서 너의 미래를 꿈꾸는 그런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카페를 찾은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인근 대학교 재학생 강태성 씨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일일 카페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카페를 찾았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매일 집을 나서며 엄마랑 인사도 하고, 통화도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분들은) 하루 아침에 자식이 없어진 거고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친아들은 아니지만, 저 분들이 보셨을 때는 제가 아들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으니까 와서 인사드리고 함께 시간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게 됐습니다."

태성 씨의 접시는 금세 비워졌습니다.

"어머님들이 어디 소풍 갈 때 도시락 싸주시잖아요. 그런 도시락 먹는 느낌이 나서 되게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유족들은 "'참사 세대' 청년들이 겪는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기 위해서" 일일카페를 준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마음에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화답했습니다.

한 청년은 유족들에게 꽃을 전달했습니다.

카페의 한 기둥 벽면은 방문자들이 남긴 쪽지들로 빼곡하게 채워졌습니다.

위로의 온기는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유족들에게 이날의 샌드위치는 청년들을 향한 위로이자, 떠나보낸 자녀를 향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상취재: 남현택)

송정훈 기자(junghu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649959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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