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서점에선 단 한 걸음만으로 지형, 지명, 시간이 바뀐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10. 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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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란 단어가 있다.

서점은 단지 새로운 책이 모여드는 공간만이 아닌, 헤테로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영업 중인' 서점은 리스본에서 1732년부터 영업 중인 베르트란드 서점이라고도 책은 전한다.

그곳은 한 걸음, 단 한 걸음만 옮기면 다른 세계로 향하는 열쇠인 책들이 모인 공간이라고 저자 호르헤 카리온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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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현실 너머를 동시에 품는 서점에 관한 깊은 사유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란 단어가 있다. 미셸 푸코가 창안한 개념으로, 유토피아와 대비되는 공간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없지만 헤테로토피아는 실재한다. 그렇다고 헤테로토피아가 현실 자체를 말하는 건 아니다.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자리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곳이다. 다락방, 묘지, 거울. 이곳은 단지 장소가 아니라 '꿈, 죽음, 또 다른 세계'로 통한다. 헤테로토피아는 하나의 실재적인 공간이면서 너머의 세계를 꿈꾸게 한다.

서점도 헤테로토피아임을 저자 호르헤 카리온은 '서점: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에서 주장한다. 왜 그런가. 서점은 단지 새로운 책이 모여드는 공간만이 아닌, 헤테로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서점은 언제나 '너머의 세계'를 품는다. 책에 따르면 서점은 '다른 서식지로 들어가기 위해 어떤 서식지를 이제 막 빠져나온' 헤테로토피아가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벌레 멘델'을 인용하며 이 책은 열린다.

서적상 멘델은 카페 글루크의 단골이었다. 멘델은 카페가 열리는 아침 7시 30분부터 문 닫는 시간까지 카페 구석 테이블을 지켰다.

덥수룩한 수염에 고수머리를 한 독특한 외모의 멘델은 변두리 카페에서 온갖 수많은 책을 쌓아뒀다. 그러고는 마치 기도문을 외우는 듯이 도서 목록과 서지 정보를 암기했다.

카페 구석에서 책을 쌓아두고 다른 세계가 열리는 '암호'를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한 명의 인간. 멘델의 테이블은 그러므로 단지 카페 구석의 한 공간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였다.

놀라운 세계 서점의 풍경이 이 책에 응축돼 있다.

작가의 사인 초판본을 상업화시키는 데 성공했던 골즈버러 북스, 시(詩)로 가장 많이 쓰인 서점으로 유명한 리우데자네이루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서점이 그렇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영업 중인' 서점은 리스본에서 1732년부터 영업 중인 베르트란드 서점이라고도 책은 전한다. 이 서점은 기네스 세계기록에도 올랐다.

서점은 세계의 축약본이다. 그곳은 한 걸음, 단 한 걸음만 옮기면 다른 세계로 향하는 열쇠인 책들이 모인 공간이라고 저자 호르헤 카리온은 말한다. 국경을 넘기 위해선 여러 절차가 필요하지만 서점에서 벌어지는 경계 넘기에는 제약이 없다. 단 한 걸음만으로 지형, 지명, 시간이 바뀐다. 진열된 책을 집어 계산대로 들어가 지폐, 동전, 신용카드와 교환하면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알처럼 품는 일 아니던가.

서점에 관한 책들은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깊이보다 넓이만을 지향하는 책이 다수인 것도 사실이다. 호르헤 카리온의 이 책은 깊이와 넓이가 모든 페이지에서 느껴진다. '서점이란 신도들의 공동체다' '오래된 책을 다루는 서점은 혼돈이, 다시 말해 무질서한 지식의 축적이 지배한다'와 같은 문장은 아름답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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