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부터 킹스맨까지… ‘에티켓’의 모든 것

장상민 기자 2024. 10. 2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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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너의 역사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도덕·철학에 치우쳤던 매너史
‘예법서 100권’ 한권으로 정리
특정계층의 몸가짐인 ‘기사도’
‘매너’ 국격 상징으로 만든 英
성관계에 대한 태도·대화까지
서양예절의 발전·퇴행 총망라
영화 ‘킹스맨’에 등장하는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가운데)가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상대와 대치하는 장면. 이때 나오는 그의 명대사 “매너가 사람을 완성한다(Manners maketh man)”는 많은 이들에게 신사와 매너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20세기폭스코리아㈜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는 ‘∼하는 법’에는 생략된 단어가 있다. 바로 ‘제대로’라는 단어다.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었다면 귀찮음을 감수하고 검색 결과를 정독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해야 하는 행동이라면 ‘제대로’ 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럴 때마다 모든 행동에 품격을 더하는 화룡점정. 그것이 ‘매너’다.

사람들이 비교적 덜 주목하던 세상사에 귀를 기울여 삶의 중심에 올려놓는 사학자인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매너의 역사에 집중한다. 그는 지금껏 학자들이 매너라는 사회 규범을 분석하는 일에 게을렀던 이유로 인류가 정신과 육체를 나눠 생각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그렇기에 종종 이뤄졌던 매너에 관한 연구조차 행동보다는 도덕 등의 철학 영역에 치우쳐 있었다고 분석한다. 책은 100권에 이르는 굵직한 예법서를 꼼꼼히 검토한 끝에 헐겁게 짜여 있던 ‘매너사(史)’의 빈 부분을 채워나간다.

가장 먼저 살펴볼 저작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1939)이다. 12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며 발전해 온 매너의 역사를 탐구해 예절로 일컬어지는 일상 의례가 사회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해낸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엘리아스의 연구가 중세 말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짧은 시기에만 집중돼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유럽 공통의 역사를 발견하겠다는 목적과 달리 프랑스 궁정의 예법에만 집중하고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키케로 등의 철학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예절 바른 행위’를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규정하며 매너에 대한 서양의 근본적 방향성을 정의했다. 키케로는 저서 ‘의무론’에서 ‘적절하다’는 의미의 라틴어 ‘데코룸’을 제시했다. 각 상황에 따른 구체적 행동 지침으로 이해되는 데코룸은 매너를 엘리트의 덕목으로 언급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정 계층이 지녀야 할 몸가짐으로서의 매너는 ‘기사도’라는 이름으로 중세에도 이어진다. 그러나 중세의 철학 저서는 신을 향한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집중했고 인간 사이의 행동 지침 또한 신실함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저자는 문학에서 기사도의 모습을 발견해내고 어린 기사를 훈육하는 ‘유아서’ 등으로부터 당대 매너의 기준과 형태를 살핀다. 이처럼 교육의 성격이 강조된 르네상스에 이르러 예절은 ‘시빌리테’로 발전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궁정과 기사계급에 요구됐던 예의바름이 모든 개인에게 확대된 것으로 짚으며 에라스뮈스의 ‘소년들의 예절론’을 근거로 삼는다. 더불어 존 로크의 ‘교육론’을 가정 훈육을 통해 보편적 예절을 가르칠 것을 주장한 저작으로 분석한다. 18세기 영국의 백작이었던 필립 체스터필드조차 매너 있는 자녀를 기르는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주는 편지’에 고백하고 있음도 빼놓지 않고 예시로 든다.

이후 근대 영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매너’를 국격의 상징으로 만들어낸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귀족으로부터 전래된 매너가 콧대 높은 고고함이었다면 영국은 부드러운 응대로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폴라이트니스’를 ‘젠틀맨’의 성격으로 규정한 것이다. 영화 ‘킹스맨’ 속 명대사인 ‘Manners maketh man’은 14세기 교육자의 말이지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미지는 산업화 이후 성장한 중간계급의 세력화였던 셈이다. 이내 이어지는 귀족들의 반격도 짚는다. 매너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에티켓’이 그것으로, 저택 사교모임을 주도했던 귀족 계급이 까다롭고 촘촘한 규칙으로 차별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최종장에 이른 책은 계급적 구분이 희미해지며 매너가 모든 개인의 감정 문제가 됐다고 분석한다. 혼인 외 관계에 초점을 맞춘 ‘섹스 가이드’, 게이 친구를 대하는 ‘게이 가이드’ 등은 살며 나누는 모든 대화와 행동에 올바른 기준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매일이 다르게 복잡해지는 사회 속 세분화되는 관계들을 일일이 규정할 수 없다는 반증이 된다.

책이 동방예의지국 한국을 비롯한 동양과 제3세계를 빼고 매너를 서양에 국한시켜 논한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매너가 없다면 거대한 재력과 권력만으로 존중받을 수 없는 시대가 됐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저자의 방대한 연구는 더 많은 연구를 위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672쪽, 3만8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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