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향한 연민 통해 카타르시스 선사[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024. 10. 2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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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문학의 가치
■ 수사학·시학
게티이미지뱅크

타인 고통에 대한 공감 인간애의 징표
운명은 냉혹하고 세상은 험난하지만
나약한 인간에게 견딜 희망 주는 게 문학

우리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가진 민족이 되었다는 데에 ‘거의’ 온 국민이 감격하고 기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말은 정말 뜻깊다. 인류 역사는 한 민족의 언어가 위대한 작가에 의해 숭고한 통찰과 사유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단테가 이탈리아어를, 괴테가 독일어를, 셰익스피어가 영어를 그렇게 했듯이, 이제 우리도 한글을 세계 수준의 문학적 언어로 발전시킬 작가들을 풍부하게 갖게 될 것이며, 그들을 애독하는 열정이 거기에 더해질 것이다. “언어는 영혼과 삶의 모상”이라는 말이 있다. 한글의 도약은 우리의 사유를 더욱더 심오하게 하고 삶의 품격을 높일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부르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는데, 그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한강은 죄책감 없이 만연한 폭력에 신음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특히 우리 역사의 상처인 제주 4·3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에 블랙리스트의 족쇄가 채워지기도 했고, 일부 독자들은 불편함을 느끼며 “너무 아파서 끝까지 못 읽겠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폭력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글에 담아낸 그의 용기와 탁월한 능력, 위대한 작가 정신이 전 세계에, 그리고 뒤늦게 우리에게 돌연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리라. 그런 절절한 서사를 써내려가면서 작가 또한 얼마나 아팠을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연민의 감정은 인간의 선량한 본성에서 나온다. 그것은 인간애의 징표이다. 기원전 4세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연민을 하나의 고통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부당하게 겪은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불행에 대해 함께 고통을 느끼는 감정”이 연민이다. 어떻게 내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연민하여 함께 고통스러워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비밀을 드러낸다. 부당하게 불행을 겪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보고, 그 불행과 고통이 나와 나의 자식, 친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할 때, 연민의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 년에 한 번 디오니소스 극장에 모여 비극을 관람했다. 무대에 등장한 주인공은 고귀한 인물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행과 고통 속에 나뒹굴며 죽기까지 한다. 관객들은 그를 바라보며 그와 함께 아파하고 몸서리친다. 운명과 권력의 폭력 앞에서 무너지는 주인공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공포와 전율에 휩싸이다가 깊은 연민에 빠진다.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주인공과 하나가 되고, 급기야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발견한다. 그 충격 속에서 인간의 연약한 본성과 운명의 냉혹함, 삶의 거친 진실을 깊이 깨닫는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험한 세상을 견디고 이겨나가야 한다는 희망과 힘을 얻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을 ‘고귀한 행위의 모방’이라고 규정하면서, “연민과 공포를 통해 그런 격정의 카타르시스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윤리학과 정치학의 테제는 고귀한 생각과 행동은 행복한 삶과 국가로 직결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비극은 철학자의 모범 답안 같은 이상적 테제를 무참히 깨고 있었다. 무대에 공공연히 올려진 비극의 역설적인 서사는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이 옳았다. 그들은 고귀한 마음으로 착하게 살아도 부당한 불행과 고통을 당할 수 있는 것이 인생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 삶의 진실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고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며,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조심하라. 고귀한 자의 행복도 순식간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인생임을.’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견디고 이겨나가야 한다는 것을.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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