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생의 고통을 직시하게 하는 힘[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024. 10. 25. 09: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0) 문학의 가치
■ 무덤
마음의 눈 감고 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돼
세월호 참사처럼 아픈 일들이 많지만
문학은 예술로 다듬어 똑바로 바라볼 용기 줘
게티이미지뱅크

루쉰(魯迅)은 근대 중국의 큰 인물이다. 그의 위대함은 일본이 그를 중국만의 자산이 아니라 일본의 자산으로도 삼아 열심히 연구하고 다방면으로 활용해온 데서도 잘 드러난다. 가령 2차 대전 이후 자신들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 일본은 루쉰의 사유를 많이 참조하였다. 그런 루쉰은 중국인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이 어엿한 근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중국인의 진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그는 회피하지 않고 중국 민중과 마주 서서 그들의 폐해를 날카롭게 낱낱이 들춰냈다.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무덤’, 1925)는 그의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는 예리한 칼날 같은 글이다.

이 글에서 루쉰은 무슨 일이든 대담하게 정시(正視), 그러니까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말하며 대담하게 일하고 대담하게 맡아 처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우리 중국인’에게는 이러한 용기가 가장 결핍되어 있다며 통탄한다.

특히 그는 지식인이 대대로 인생에 대하여, 사회현상에 대하여 정시하는 용기가 태부족했음을 콕 집어 지적했다. 공자가 말한 ‘비례물시’(非禮勿視), 곧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삼아서 정시는커녕 옆에서 바라보거나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했다고 한다. 그 결과, 중국은 서구 열강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여기저기 국토를 그들에게 뜯기고, 나라 전체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어떠할까? 우리의 인생을, 사회를 정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외면한 채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인생, 사회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가? 그러면 이건 어떠할지. 우리를 불편케 하는, 때로는 우리를 분노케 하는 상황에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똑바로 바라볼까, 아니면 여전히 외면하고 마는 걸까. 루쉰은 말한다. “먼저 담대하지 않으면 뒤에 가서는 할 수도 없고, 더 뒤에 가서는 당연히 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게 된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담대함, 곧 용기라는 얘기다. 용기가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용기가 없으면 그저 외면하고 만다. 그렇게 외면함이 쌓이면 나중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된다. 분명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말이다. 육체의 눈은 뜨고 있지만 마음의 눈은 감은 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음의 눈이 병들었음이다. 그렇다 보니 병이 깊어지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 오독과 왜곡을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며 그것이 가짜인 줄을 인지하지 못한다.

역사를 바라봄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에는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를 불편케 하는 일도 있다. 특히 우리의 근현대사에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일보다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 일들이 한층 더 많다.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도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저지른 갖은 만행과 참상이 그러하고, 6·25전쟁의 동족상잔이 그러하다. 제주 4·3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마찬가지다. 근자의 세월호 사건과 이태원 참사 또한 그러하다. 이들을 똑바로 바라보려면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데 과연 우리 사회에는 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충분한지, 못내 미덥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문학이 소중하다. 문학은 우리를 불편케 하고 슬프게 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것을 글에 담아내고 진실을 증언한다. 그 과정에서 문학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을 예술적으로 가다듬어 그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공명케 해준다. 그렇게 우리에게 인생을, 사회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안겨준다. 문학이 늘 소중한 까닭이다. 꼭 노벨상 같은 큰 상을 탔기 때문에 문학이 새삼 소중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