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죽을 수 있단 공포…정서적 문제는 보살피지 않아”

윤은숙 기자 2024. 10.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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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겨레] 양선아 기자 ‘한국유방암학회’서 투병 경험 나눠
유방암 치료 뒤에 많은 환자들이 재발과 전이에 대한 우려로 각종 검사들을 많이 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수많은 힘든 국면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힘든 순간을 꼽으라면, 진단 뒤 정확한 치료 계획이 나오기 전이었습니다. 암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압도되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전이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지난 12일 제주도 그랜드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유방암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이색적인 연사가 연단에 올랐다. 한겨레 ‘책&지성’ 팀장인 양선아 기자다. 양 기자는 2019년 12월12일 호르몬성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항암-수술-방사선 등 여러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병을 극복했으며 2023년 2월 다시 직장에 복귀했다. 올해 12월 정기검진 뒤 5년 완치판정을 앞두고 있다.

보통 학술대회는 의학 지식과 최신 연구 성과 공유에 초점을 맞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연사가 의사다. 그러나 이번 유방암학회는 투병 경험을 의료진과 나눌 수 있는 연사를 초청했다. ‘유방암, 이제 난치병이 아닙니다’라는 주제로 연단에 오른 양 기자는 “한국에서 유방암 치료는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도, 암 환자를 위한 정서적 지원이 지금보다 체계적으로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2019년부터 항암 투병…연말 완치 앞둬

12일 제주도 그랜드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유방암학회 2024 추계학술대회에서 양선아 한겨레 기자가 ‘아픈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라는 내용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양 기자는 이날 발표에서 암 환자에 대한 정서적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유방암학회 제공

그는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과 화학적 치료에만 치중할 뿐 환우들의 심리적·정서적 문제는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나는 기자라는 직업 덕에 정보 접근성이 높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도 많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완전히 깜깜한 방에 혼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끼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양 기자는 치료 과정에서 목격한 안타까운 사연도 소개했다. 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의 어머니는 남편의 실직과 자신의 암 진단이 겹쳐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위기를 맞았다. 결국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하지만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이후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현재는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암 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상당하다. 이러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이라는 분야가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연구가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2014년 한국정신종양학회가 창립됐다. 정신종양학은 환자의 심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암 치료에 대한 이해와 신체적·사회적 요소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해 치료를 제공한다. 암 환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암 환자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클리닉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 이런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소수 대형병원뿐이다.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 병원에서는 상담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들, 깜깜한 방 갇힌 듯한 기분’”

정석훈 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은 주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돕는 훈련을 받는데, 종양정신의학

에서는 살고 싶지만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정신과 의사들이 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면, 암 환자와 보다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의료진이 환자들과 암의 치료 과정과 부작용, 예후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공유할 경우 상담 효과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환자들이 암 진단을 받으면 재발과 사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특히 생존율이 높은 유방암 환자처럼 오랜 기간 치료받는 경우, 그 심리적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환자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이 환자 본인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이를 해소하는 데 정신과적 접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환자들이 불안한 생각에 휩싸이지 않도록 돕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며, 긍정적인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포에 매몰되지 않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산책 등 신체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 교수는 암 환자 보호자들의 정신 건강 관리 역시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호자들이 환자 돌봄에 온 힘을 쏟는 것은 이해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보호자 자신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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