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동성애 물리칠 신의 도구”… 복음주의자의 트럼프 지지 이유[북리뷰]

서종민 기자 2024. 10. 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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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워싱턴 정치'를 수십 년 동안 취재하던 언론인이 지난해까지 4년간 기독교에만 파묻혀 지냈다.

복음주의자, 즉 누구보다도 신실한 기독교도를 자처한 이들이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신격화'하는지 파고들었다.

이 책을 통해 복음주의자들은 트럼프야말로 그 목록을 제거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답한다.

잘 알고 있다는 듯, 트럼프는 자신을 둘러싼 공화당 내 분열에 대해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고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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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권력, 영광
팀 앨버타 지음│이은진 옮김│비아토르

미국에서 ‘워싱턴 정치’를 수십 년 동안 취재하던 언론인이 지난해까지 4년간 기독교에만 파묻혀 지냈다. 복음주의자, 즉 누구보다도 신실한 기독교도를 자처한 이들이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신격화’하는지 파고들었다. 버젓이 상욕을 일삼고 색욕으로 물의를 일으켜 왔던 트럼프는 기독교도라고 보기조차 어렵다. 공화당에는 기독교도로서 손색없는 정치인이 많다. 복음주의 지지층은 어째서 이들을 외면하고 트럼프를 2016년에 이어 다음 달 5일 대선까지 후보로 소환한 걸까. 목사였던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날, 저자는 ‘정교(政敎) 취재’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저자가 수백 곳의 교회, 종교 대학·단체, 정치유세 현장 등을 뛰어다닌 결과물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 저자가 서문에 인용하는 마태복음의 6장 13절은 ‘악’으로부터 구해 달라는 적극적 표현이다. 다른 일은 어떻게 돼도 좋으니, 악만큼은 기필코 물리쳐 달라는 호소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낙태, 동성애, 이교도….” 복음주의가 지목하는 ‘악’의 구체적인 목록이다. 이 책을 통해 복음주의자들은 트럼프야말로 그 목록을 제거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답한다. 트럼프는 ‘신의 도구’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 도구의 흠결쯤은 넘겨줄 수 있다. 이들에 따르면 악 앞에 어정쩡한 기성의 공화당 정치인이 아니라 트럼프에게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 잘 알고 있다는 듯, 트럼프는 자신을 둘러싼 공화당 내 분열에 대해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고 반응했다.

트럼프의 발언 의도와 무관하게 ‘영적 문제’라는 표현은 옳다. 저자가 만난 한 대형교회 목사의 사무실에는 ‘트럼프 성역’이 꾸며져 있었다. 2m 포스터, 관련 신문기사뿐 아니라 X 게시글의 인쇄물도 액자에 담겼다. “트럼프와 그를 추종한 많은 아첨꾼을 취재했지만, ‘트럼피즘’을 모신 성역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자의 인터뷰에 응한 그 목사는 과도한 정치 관여를 후회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저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도록 돕는 일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악에 맞서 싸우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 마태복음의 이 대목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한다. 온 나라를 다스릴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돌렸다. 일개 정치인의 성역을 만들거나 신의 도구 운운한 것은 우상 숭배라고 단언한다. 그 사이 기독교는 무너지고 있다. 30년 전에 비해 미국 목회자 중 40세 이하 비율이 3분의 1가량으로 떨어졌고, 거대했던 각 교단은 세부 교단으로 갈라져 반목을 거듭했다. “복음주의라는 단어가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된다. 저자는 전국을 다니며 만난 복음주의자와 그 열광을 선거운동에 이용한 소위 정치전략가 등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아낸다. 복음뿐 아니라, 여러 중요한 단어를 서로서로 어떻게 달리 쓰고 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를 가리켜 “개탄스러운 자”라고 한 바 있다. 이처럼 게으르게 갈라치는 태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주는 책이다. 724쪽, 3만80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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