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아편 한 포대… 세계를 어떻게 바꿨나[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10. 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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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와 재
아미타브 고시 지음│김홍옥 옮김│에코리브르
18세기 영국 필수기호품 茶
中서 수입하며 무역 불균형
아편밀수로 만회하려다 전쟁
인도는 아편재배로 착취 당해
교역국가서 끝내 대립관계로
21세기 미·중 갈등과도 유사
영국 동인도회사의 증기선 네메시스가 청나라 정크선을 파괴하는 모습. 그림은 E. 던컨이 1차 아편전쟁을 묘사한 유화작품(1843)이다. 1840년에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서 일어난 아편전쟁에 대해 ‘연기와 재’의 저자 아미타브 고시는 “제국주의의 확장과 국가 간 경제적 착취의 상징”이라고 평가한다. 위키피디아

19세기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서 일어난 ‘아편전쟁’.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방의 강국들에 의해 청나라(중국)가 패배했다는 사실과 그 시작이 마약의 일종인 ‘아편’이었다는 것 외에 기억이 나는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이자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한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는 ‘차와 아편’을 중심으로 영국, 인도, 중국이 중심에 있는 복잡한 역사를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차와 아편은 제국주의적 확장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 착취의 상징이 된다.

고시는 어린 시절 중국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국인 커뮤니티가 모여 있는 인도의 콜카타에서 자랐음에도 중국과의 관계는 멀게만 느껴졌던 그에게는 다른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이 단순히 ‘미지의 영역’으로만 남아 있었다. 처음으로 중국을 탐구하게 된 계기는 아편전쟁 직전인 18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3부작의 첫 책인 ‘양귀비의 바다’를 집필하면서다. 전쟁의 이면에서 그는 비로소 중국과 인도가 얽힌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아편전쟁의 시작은 사실 아편이 아닌 차에서 비롯됐다. 18세기 영국에서 차는 귀족과 대중 모두의 필수 기호품이었지만, 영국은 중국이 제공하는 차에 상응하는 무역품을 마련하지 못해 무역 불균형에 직면했다. 중국의 제한적인 무역으로 영국은 차 거래를 지속할수록 손해만 커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편’.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몰래 수출해 무역의 균형을 맞추려 했다. 밀거래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며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그 결과는? 아편전쟁은 중국을 서구 열강의 경제적 영향력 아래로 끌어들이며, 불평등한 조약을 강요당하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고시는 “차 한 잔과 아편 한 포대는 제국주의의 확장과 국가 간 경제적 착취의 상징”이라며, 이 사건들이 국가 간의 권력 다툼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인도는 본의 아니게 전쟁을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인도는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라, 차와 아편 무역의 중심지 위치에 있었다. 영국은 인도라는 식민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로 아편을 생산할 수 있었고 중국에 밀수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도 농부들은 아편 재배로 인해 심각한 착취를 당했고, 빈곤이 가중됐다. 인도는 제국주의 경제 체제의 중요한 축으로 착취와 희생 속에서 세계 경제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의 불합리함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찻잔, 설탕, 도자기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 주변의 물건 대부분은 과거의 무역과 갈등의 산물이다. 이를테면 도자기는 중국과 미국의 교역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상류층 사이에서 중국 도자기 제품이 유행하며 중국과 미국의 거래는 활발해졌고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중국풍 도자기가 대중화돼 중국의 예술가들은 질이 낮고 값이 싼 ‘미국용’ 도자기를 만들어 수출하기도 했다. 우리가 오늘날 소비하는 물건들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수백 년 전 벌어진 세계사의 흔적”이다.

자칫 역사서에 그칠 수 있었던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역사를 복원하고 그 의미를 현대로 가져와 새로움을 더한 것.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그 속에서 인간의 선택이 세계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일종의 ‘연결성’이 생겨난다. 차와 아편 무역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 경제적 착취의 산물로서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 과거의 아편이 청나라의 몰락을 이끌었다면 현대 사회의 마약 중독 또한 유사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아편전쟁으로 인해 서구 열강에 굴복하고 맺은 톈진조약은 현재까지도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청나라와 교역을 이어가던 영국이 끝내 대립 관계로 치닫게 된 것은 현대의 미·중 갈등이 왜 ‘21세기판 아편전쟁’이라고 불리는지 깨닫게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차나무의 씨앗에서 시작됐다. 손톱보다도 작은 이 씨앗이 서구 열강을 들썩이게 했고 청나라를 아편으로 몰락하게 했다. 우리가 마시는 차 한잔이나 섣부르게 발사된 총알 한 발에도 세계는 흔들릴 수 있다. 인간의 선택은 내밀하고 역사는 본래 사사로운 것에서 비롯된다. 역사 속 사건들은 시간이 흘러 형태를 잃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 시간이 남긴 ‘재’는 우리 일상 속에 뒤섞여 아주 오랫동안 함께하게 될 것이다. 488쪽, 2만8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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