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기적

서울문화사 2024. 10. 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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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54)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대한민국에는 말 그대로 ‘한강 신드롬’이 불어닥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후 역대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고, 아시아 여성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문학동네 ⓒ전예슬 제공

한강은 누구인가

한강은 1970년 11월 27일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부터 오빠와 남동생까지 모두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문인 집안이다. 한강의 아버지는 작가 한승원이다. 한승원 작가는 1966년 등단,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소설집<새터말 사람들>, 시집 <열애 일기> <달 긷는 집> 등을 펴냈다. 한승원 작가는 1996년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낙향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올해 초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사람의 길>을 펴내는 등 여전히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강은 오빠와 남동생이 있는데 오빠 한규호 역시 필명 한동림으로 알려진 소설가다. <받침 없는 동화> 등의 저서가 있다. 남동생 한강인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소설가 겸 만화가다.

한강과 수년 전 이혼한 것으로 알려진 전남편 홍용희는 평론가로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를 맡고 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문예지 <문학동네> 2000년 여름호에 실린 한강의 자전 소설 <침묵>을 통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한강은 자식을 낳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에 소설 속 남편은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거,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때 한강은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나왔고, 자식을 낳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한강의 글쓰기 재능은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 한강은 전통 사상에 바탕을 깔고 요즘 감각을 발산해내는 작가”라며
“어떤 때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서 질투심이 동하기도 한다” 고 말했다.

대대로 글쓰기 집안 ‘글수저’

집안 대대로 글쓰기를 업으로 했기에 한강은 ‘글수저’라는 별명도 있다. 한강의 글쓰기 재능은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딸에게 소설 쓰는 법을 따로 가르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한승원 작가는 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찾아온 기자들에게 “딸한테 방 하나를 따로 줬는데 한참 소설을 쓰다가 밖에 나와 보면 딸이 안 보였다”며 “이 방, 저 방 다녀서 찾고 그랬는데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공상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한승원 작가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 한강은 전통 사상에 바탕을 깔고 요즘 감각을 발산해내는 작가”라며 “어떤 때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서 질투심이 동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강은 어려서부터 익힌 피아노와 노래 실력이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린 시절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10원짜리 종이 건반을 가지고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한강은 2007년에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펴냈는데, 흘러가버린 노래 22곡 속에 작가의 아련한 추억을 담아낸 이 책에 작가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보컬까지 맡은 노래 10곡을 담은 음반(CD)을 함께 수록했다.

한강은 광주효동초등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올라와 선경여자중학교, 풍문여고를 졸업하고 1989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고교 때 한글날 글짓기에서 텔레비전을 ‘말틀’이라고 부르겠다고 표현해 상을 받은게 한강의 유일한 학창 시절 수상이었다고 한다.

1993년 대학 졸업 후 잡지 <샘터>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습작을 하기 시작해 같은 해 계간 문예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5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한강은 이후 <여수의 사랑>(1995),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 <내 여자의 열매>(2018) 등등 다양한 소설집과 장편소설들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몽고반점>으로 제29회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버지 한승원도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부녀가 모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한강 부녀가 최초였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구 문예창작과)에서 예비 작가들을 상대로 소설 창작론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전업 작가로서 삶을 이어나갔다.

한강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소설 <채식주의자>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 국제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 국제상 수상에는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공이 컸다. 영국 중부 소도시 동커스터 출신인 그녀는 200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영어만 할 줄 알았던 그녀는 한국어 전문 번역가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2010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런던대 동양 아프리카대(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녀는 한강의 작품을 알아보고 세계 무대에 알린 일등 공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막 마쳤을 때 소식을 들었다. 매우 놀랐고 영광스럽다”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강의 캐리커처

깜짝 수상에 주식시장도 들썩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4명의 쟁쟁한 최종 후보들과 겨뤄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위원들로부터 과반 이상의 표를 얻어냈다는 이야기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노벨상은 1년여 동안 철저한 비공개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다. 노벨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수상자 선정 절차는 전년도 9월부터 수상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서한을 전 세계 전문가 수백 명에게 발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상자 추천을 받고 노벨 문학분과위원회가 심사 끝에 최종 후보 5명을 선정하면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이른바 스웨덴 한림원 소속 18명으로 이뤄진 심사위원들이 최종 후보 5명의 작품을 읽어보고 토론 후 투표를 통해 과반 가결로 결정한다. 수상자가 발표된 이후에도 후보자 심사 등 관련 정보 일체는 50년간 봉인된다.

한강의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사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러 해외 베팅 사이트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들을 올려놓았는데 호주 소설가 제럴드 머네인, 중국 작가 찬쉐, 한국 시인 고은, 캐나다 작가 앤 카슨, 미국 토마스 핀천,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 영국 살만 루시디 등의 이름만 있었고 한강의 이름이 거론된 곳은 전혀 없었다. 그만큼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나머지 4명의 쟁쟁한 최종 후보들과 겨뤄 스웨덴 한림원의 심사위원들로부터 과반 이상의 표를 얻어냈다는 이야기다. 심사위원들은 한강의 소설들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깊은 어둠과 상처를 담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강은 2016년 2월 한 문학 행사에서 13살 무렵에 아버지가 5·18민주화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보여준 것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역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한강을 비롯한 많은 한국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글쓰기는 가부장적이고 때로는 여성 혐오적 한국 문화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분석했다.

한강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아버지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기에 수상 기념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다만 노벨위원회는 약 7분간의 전화 인터뷰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한강은 인터뷰에서 “매우 놀랐고 정말 영광스럽다”며 “아주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책 읽고 산책을 한 평범한 하루였고,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막 마쳤을 때 소식을 들었다.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한강의 보다 자세한 소감은 12월 10일로 예정된 노벨상 시상식에서 낭독되는 수락 연설문을 통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강은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듯 보이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대한민국은 한강 신드롬이 불어닥쳤다. 당장 주식시장부터 들썩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다음 날인 10월 11일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예스24는 상한가로 치솟았고, 밀리의서재(23.63%), 예림당(29.79%), 삼성출판사(14.24%) 등 출판 관련주가 일제히 급등했

다.

한강의 책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경기 파주출판단지는 증쇄를 위해 직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특근에 들어갔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이른 아침부터 한강의 책을 사려는 시민들이 ‘오픈런’을 하기 위해 입구에서 줄을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영화와 드라마, 클래식, 대중음악, 미술, 음식 등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AP 통신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반영한다”며 “앞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성공을 거뒀으며,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K팝 그룹도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육종심(프리랜서) | 사진 : 문학동네 ©전예슬, 일요신문 제공, ‘책방오늘’ 인스타그램,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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