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도교와 유교의 이상을 담다… 인간과 자연 하나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공간 원림(園林)

2024. 10. 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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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와 유교의 이상을 담다… 인간과 자연 하나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공간 원림(園林)

정원(庭園, garden)은 집이나 성, 궁전안에 꾸며져 있는 뜰이나 꽃밭이다. 흙이나 돌, 나무, 물 등의 자연 재료와 연못, 정자, 계단, 조명 등 인공물, 다양한 건축물 등을 특정 테마나 양식에 따라 적절히 배치해 만든다. 시대나 지역에 유행했던 건축이나 문화양식을 알 수 있어 건축사나 문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의 정원은 '원림'(園林)으로 부른다. 중국의 가장 오랜 자전(字典·사전)인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원림은 숲이나 연못이 꾸며져 금수를 키울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곳이다. 중국의 원림은 인공으로 만든 가산(假山)과 연못, 정자, 대, 누각 등 인공적 요소, 화초, 나무 그리고 달과 바람 등 자연적 요소를 한곳에 집약시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공간을 탄생시켰다. 원림에 들어서면 중국인의 우주관과 가치관, 심미관, 그리고 동양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절제된 아름다움, 평온함, 그윽한 분위기 등 원림은 대자연 그대로의 풍광과는 달리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이 담겨 있다.

칭화대 건축대학 교수였던 러우칭씨가 지은 '중국 원림'(대가 펴냄)에 따르면 중국의 원림은 문화와 예술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데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베이징의 이화원 등 북방의 황가 원림은 작은 오작교와 흐르는 시내, 깊숙이 이어지는 굽은 통로 등 뛰어난 경관과 화려한 궁전식 건축물로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낸다. 반면 강남 일대의 졸정원, 유원, 망사원 등 고관이나 대상인, 문인들이 소유한 민간의 사가 원림은 산수와 수목을 충분히 활용해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시적 정취가 깃들여 있으며,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을 누리려는 철학을 담고 있다.

◇ 중국 원림의 종류와 감상법

중국의 원림은 크게 황실의 황가 원림과 민간의 사가 원림으로 나뉜다. 황제로부터 귀족층에 이르기까지 정치를 논하고 연회를 연 공간으로 사냥, 오락, 독서, 글짓기, 예술 감상 등 다양한 취미의 무대였다.

황가 원림은 베이징 등 북방 원림으로 대부분 명·청 시대에 지어졌으며 황제의 거주, 여행, 연회, 사냥 등의 목적으로 사용됐다. 때문에 규모가 웅장하고 배치와 조화에 많은 공을 들었다. 사가 원림은 양자강 이남이나 문인들이 은퇴후 살았던 고산 또는 강가에 주로 분포한다. 아름답고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 태산 형산 숭산 화산 항산 등 오악이나 항주 서호처럼 오랜 기간 개발과 보존을 통해 개방적인 형태의 풍경 원림구, 사찰 도관 암자 사당에 속하는 사원 원림 등도 있다. 사원 원림의 대표로는 소주의 서원, 항주 서호의 영은사, 북경의 담자사, 승덕의 외팔묘 등이 꼽힌다.

원림은 시, 회화, 서예, 조각, 분재, 음악, 연극을 하나로 융합한 고도의 예술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지자요수 인자요산)고 한 것과 관련이 깊다. 도교의 신선 사상과도 밀접하다. 원림에 심겨진 소나무 대나무 매화 등 '세한삼우'(歲寒三友)는 고상한 인품을 상징한다. 황제의 유명 원림인 피서산장 속 가장 중요한 산은 온 산을 소나무로 뒤덮은 송운협이다. 강남 일대의 사가 원림엔 거의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당송의 대문호 백거이와 소식(소동파)이 시에서 읊었듯 대나무는 고고한 절개를 뜻한다. 연꽃은 속된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이 갖춰야 할 고상한 품격과 절개를 비유한다. 소주의 졸정원엔 연꽃으로 유명한 유청각이 있다.

원림의 제영(題詠·제목을 붙여 시를 읊음)이나 건축물 기둥에 붙어있는 대련(對聯)은 시와 노래로 원림 소유주의 정서적 품위를 드러낸다. 가령 제남 대명호에 있는 대련의 "사면에 연꽃, 삼면에 버드나무(四面荷花三面柳·사면하화삼면류), 성 전체가 산에 둘러 쌓여 있고 그 절반은 호수로다(一城山色半城湖·일성산색반성호)" 구절은 대명호와 물의 도시, 샘의 도시로 불리는 제남의 경치를 잘 표현했다.

원림은 어느 위치에서든 한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근경과 원경의 차별화, 대(臺)·헌(軒)·사(舍)·정자(亭子)의 배치, 가산·연못의 조화, 화초와 나무의 어울림으로 시적인 정치와 그림같은 아름다움이 창조된 것이다. 회화기법은 호수나 연못의 물, 돌을 쌓아 만드는 가산 분야에 응용됐다. 연못엔 구부러진 돌다리를 두거나, 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설치해 공간을 다양화했다. 아름다운 문양의 창문과 긴 회랑은 경관의 깊이를 더한다.

명승지를 원림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법도 많이 활용됐다. 원명원 안의 삼담인월월(三潭印月), 평호추월(平湖秋月) 등 경관은 항주 서호의 10경을 본뜬 것이다. 북경 자금성의 영수궁 화원과 승덕의 피서산장에는 동진 시대 절세의 서예가 왕희지가 절강 소흥성 밖 난정에 모여 구불구불한 도랑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어 놀던 것을 본떠 유상곡수(流觴曲水)를 만들었다. 이화원의 불향각과 지혜해불전처럼 때론 사찰이 원림의 주요 경관이 되기도 했다.

◇ 대표적인 중국 원림

황가 원림의 대표적인 북경 어화원(御花園)은 뛰어난 경관과 화려한 궁궐 건축으로 황실의 위엄을 드러낸다. 자금성(紫禁城)에는 어화원, 자녕궁화원(慈寧宮花園), 건복궁화원(建福宮花園), 녕수궁화원(寧壽宮花園) 등 네곳의 원림이 있는데, 그 중 어화원의 규모가 가장 크다.

자금성 북쪽 끝에 위치한 어화원은 황후와 황제가 궁내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 정원이다. 정원 안에는 주요 정자인 만춘정을 비롯, 10m 높이의 태호석으로 쌓은 기암괴석의 퇴수산(堆秀山)과 그 위에 높이 세워져 있어 자금성의 풍경을 조망하기 좋은 어경정(御景亭) 등이 있다. 중심 건물인 흠안전(欽安殿)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으로 정자와 누각형태의 건축물들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가산과 괴석 그리고 소나무, 측백나무와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어화원은 명(明) 영락15년(1417)에 건설을 시작해 18년(1420)에 완성됐다. 명대에는 궁후원(宮後苑)이라 하였는데, 청대(淸代)에 어화원으로 개칭했다.

이화원은 북경 북서쪽 하이뎬구에 위치한 황실 원림이다.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 5A급 관광지로,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잘돼 있는 황실 정원이다. 1750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원래 이름은 청의원이었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가 1886년 광서 황제가 자희태후(慈禧太后)의 요양을 위해 같은 장소에 같은 규모로 2년 동안 재건축해 지금의 이화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총면적 2.9 km에 달하며, 중국 고전원림의 본보기로 높이 60m인 만수산(萬壽山)과 면적 2.2 km인 곤명호(昆明湖)가 있다. 4분의 3이 호수로 이뤄져 있고, 들풀과 꽃이 도처에 깔려있으며 숲도 무성하다. 측백나무와 소나무로 이뤄진 만수산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며, 곤명호를 끼고 있는 뚝방길의 버드나무와 복숭아 나무는 강남식의 볼거리다. 다양한 고대 건축물들이 3000개나 되며 크고 작은 정원이 20개, 건축명소는 100개 가량 된다. 정원 내 진열된 4만개의 문물들은 값진 골동품들이 많으며, 청조시대부터 사용돼왔던 유서 깊은 생활용품 또한 국가 유물들이다.

원명원(圓明園)은 원명(圓明)·장춘(長春)·만춘(萬春)의 3원(園)을 통칭하는 것이다. 청 황실에서 매년 하절기 더위를 피해 이곳에서 정무를 처리해 하궁(夏宮)이라고도 했다. 북쪽 서북 교외에 이화원과 서로 이웃하고 있다. 면적은 16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그중 원명원은 명대의 원림이었는데 강희제가 자신의 넷째아들 윤진(옹정제)에게 사여했다. 원명원이 매년 여름 개최하는 연꽃 축제는 유명하다.

중국 하북성 승덕의 피서산장은 1702년 청 강희제가 열하(현 승덕)에 지은 청나라 황제들의 별궁으로, 옹정제를 거쳐 건륭제 말년에 완성된 뒤 약 200년간 황제들의 여름궁전으로 이용됐다. 여름이 서늘한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만주족들에게 북경의 여름 더위를 피할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피서산장이다. 피서산장은 궁전 구역과 자연경관 구역으로 이뤄졌다. 10만평방미터에 달하는 궁전 구역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청 황제가 기거하면서 행정 사무 및 의식을 치르는 장소였다. 정원은 산림, 호수, 초원 지대로 이뤄져 있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이 일흔을 맞은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은 곳이 바로 피서산장이다.

사가 원림 중에선 소주(蘇州)의 원림이 유명한데 강남 일대의 차경과 태호석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원(留園), 개방된 수상 풍경으로 건축과 수경의 변화무쌍한 결합을 보여주는 졸정원(拙政園), 괴석들이 사자를 닮은 사자림(獅子林), 작고 복잡한 구조에서도 넓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망사원(罔師園) 등이 빼어난 산수와 수목을 사용한 것으로 이름 높다.

◇ 한중일 3국의 정원 비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도교를 중심 원리에 둔 반면 한국의 경우는 유교의 영향이 더 컸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종교적 수행에 걸맞은 수련도구로 간주됐으며, 신선의 세계를 연출하거나 괴석 등 상징적인 것들이 정원에 놓였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곧 인격의 아름다움으로 삼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정원은 산수의 경치를 그대로 닮아야 했고 정원을 꾸미는 것도 최소화했다.

중국 원림은 도교 사상을 기반으로 신비적 풍경식 정원의 신선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태호석(太湖石) 등 기암괴석 등을 통해 독특하고 신비적인 세계를 연출한다. 거대한 괴석들로 장식된 호수와 못, 정자와 회랑을 오가면서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시(詩)·서(書)·화(畵)가 접목돼 상징과 비유를 통해 시화속 정취와 각 명승지의 장점이 표현돼 있다. 중국의 원림은 문인들의 시와 그림 속에 살아 있고 그림 속 풍경은 원림이 돼 생명을 얻게 된다.

한국의 정원(庭苑)은 중국의 정원(庭園)과 한자가 다르다. 한국 정원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조형된 것이 특징이다. 원래 지형을 최대한 변형하지 않는 것으로, 풍수지리설의 지기(地氣)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과 상통한다. 대표적인 게 화계다. 화계는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조경 시설로,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건축물이 입지할 터를 잡는 과정에서 옹벽과 화단을 겸해 만들어지는데, 경사면의 침식을 예방하고 차경(借景)이 발달한 정원 풍경을 동적으로 연출하는 효과도 있다. 경복궁의 교태전 후원 화계가 대표적이다. 한국 정원은 유교의 영향이 강하다. 정원은 요산요수(樂山樂水)하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는 공간이었다. 또 신분에 따라 채를 나누고, 공간의 열림과 닫힘의 미학을 적용해 정원을 조성했다. 담양의 소쇄원은 상하의 위계를 고려해 석축단으로 단차를 두어 공간을 조성했고, 선조의 공간을 존중해 정원 내부를 피해 담장 밖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확장해갔다.

일본 정원의 경우 외부의 경관을 정원내의 경관과 융합시키려는 차경 수법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본래보다 넓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또 외부의 경관을 내부의 경관과 융합시키거나 대비시킴으로해서 경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활용됐다. 일본 정원은 자연을 소재로 한 야외 예술이며 공간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정원술은 건축이나 다도, 꽃꽂이, 불교와 도교사상 등과 함께 발전해왔다. 다도의 발달로 인해 다정(茶庭)이 발달한 좋은 예다. 다정은 차를 마시는 공간인 다실에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으로 불심암(不審庵) 오모테센케(表千家) 정원 등이 있다. 일본의 정원 양식은 자연을 그대로 구현화한 것이 아닌 상징적으로 추상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정원술은 자연의 경관과 신선의 세계, 정토 세계 등을 축경(縮景)시켜 정원을 꾸며왔다. 그래서 일본 정원은 상징적 축경식 정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정원으로는 서방정토를 의식해 세워진 건물 좌우에 날개를 단 듯한 좌우익랑 형식의 아미타당(불교의 아미타불을 모신 곳)과 그 전방에 원지가 인상적인 평등원, 이끼 정원으로 유명하고 상단은 고산수식 하단은 황금지를 중심으로 한 지천회유식 정원인 서방사, 용안사 방장 앞의 석정, 하나의 못을 다수의 서원조 건물에서 감상하도록 꾸며진 제호사 삼보원 등이 꼽힌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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