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시멘트 논란이 들춰낸 시멘트 업계의 ‘꽃놀이패’

김동인 기자 2024. 10. 2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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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설 공사비를 안정화하기 위해 시멘트 수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허용하는 수순이다. 가격 안정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10월9일 인천 서구의 한 레미콘 공장에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시사IN 조남진

무겁지만 무게 대비 가격은 싸다. 구하기 쉽지만 예민해서 보관·관리하기가 어렵다. 필수 산업재임에도 불구하고 수입·수출하기엔 제약이 많다. 모두 한 가지 물질에 대한 설명이다. 인류가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콘크리트의 원료, 시멘트 이야기다.

10월2일 정부의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 발표 직후 시멘트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날 정부는 공사비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주요 건설자재 중 하나인 시멘트 수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허용하는 수순으로 이해되었다. 당장 후폭풍이 따랐다. ‘중국산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라는 표현도 등장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품질 낮은 시멘트로 만든 부실한 건축물’을 연상케 했다. 이런 우려는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여야 의원 모두가 지적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정부가 ‘수입 시멘트’를 고려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10월2일 정부 대책은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심화된다며 등장했다. 최근 재건축과 같은 정비사업 현장에서 공사비 인상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공사비 상승이 분양가를 끌어올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공급 확대’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최근 금융 당국이 수요 둔화를 위한 대출 규제를 꺼내들었지만, 정부의 기본 정책은 공급을 늘리면 부동산 시장도 안정된다는 논리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공사비 상승이라는 변수가 주택 공급 감소는 물론 부동산 PF 문제를 심화시키는 배경이 되면서 이대로는 정부가 목표하는 공급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GTX와 같은 국책사업의 입찰이 계속 불발되는 것도 공사비 상승의 여파 때문이다. 정권 차원에서 ‘공사비 이슈’를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건설공사비 지수로 따져도 인상폭이 크다. 2020년 공사비를 100으로 놓았을 때, 2024년 7월 공사비는 129.96까지 상승했다. 공사비를 끌어올린 주된 원인은 바로 재료비(건설자재) 상승이다. 재료비 중에서도 시멘트 가격 상승이 가파르다. 2020년 7월 톤(t)당 7만5000원이던 시멘트는 불과 4년 만인 지난 7월, 11만2000원으로 약 49% 올랐다.

급격한 가격 상승의 원인은 유연탄 가격 변동이 꼽힌다. 시멘트는 제조 과정에서 소성로를 가열할 유연탄이 필수적인데, 2022년 중국-오스트레일리아 무역분쟁, 인도네시아 석탄 수출규제 등으로 글로벌 석탄 가격이 3배가량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시멘트 가격도 급상승했다. 그런데 유연탄 가격은 2023년 들어 안정화된 반면, 시멘트 가격은 이후 점진적으로 계속 올랐다. 정부는 ‘원료 가격이 안정화되었는데도 시멘트 업계가 가격을 내리지 않는’ 문제, 즉 가격의 하방경직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수 중심인 시멘트 시장에 수입 시멘트라는 카드를 꺼내 가격경쟁을 유도하려 한다.

반면 시멘트업계는 정부 정책과 건설시장 위축으로 인해 시멘트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며 반발한다. 이익이 생기더라도 정부 정책에 따라 탄소 저감 설비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멘트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업종 중 하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시멘트업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산업 배출량의 13%를 차지한다. 철강(35%), 기초화학(16%)에 이어 세 번째로 배출량이 많은 업종이다. 이 때문에 시멘트 산업은 탄소 저감이 필요한 대표적 산업으로 꼽힌다.

생활 쓰레기를 시멘트업계가 처리?

한국시멘트협회가 발표한 ‘2023년 시멘트 산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멘트업계 8개사의 당기순이익은 5935억원, 설비투자에 들어간 비용은 5683억원이다. 업계 주장대로 설비투자액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시멘트업계는 2023년이 유독 성과가 좋았을 뿐, 2020~2022년에는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설비투자에 들였다고 설명한다. 과도한 이익을 편취하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업계는 전체 설비투자액 가운데 89%(2023년 기준)가 환경규제 대응 등을 위한 ‘합리화 설비’ 투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익을 내는 만큼 탄소중립에 필요한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멘트업계가 말하는 ‘탄소 저감을 위한 설비투자’는 업계가 억지로 쏟아붓는 돈이 아니다. 시멘트업계는 그 자체로 거대한 자원순환 사업으로 변모 중이다. 생활 쓰레기의 상당량을 시멘트업계가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을 예로 들어보자. 플라스틱 자원을 순환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물리적으로 분쇄해서 재활용하거나, 화학적으로 분해해 재활용하거나, 아예 태워서 열에너지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물리적·화학적 재활용은 (깨끗한 플라스틱을) 선별하는 문제, 반복 재활용이 어렵다는 문제, 사업성이 높지 않다는 문제 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전체 쓰레기 중 상당량이 열에너지(소각)를 만들어내는 용도로 활용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용처가 바로 시멘트 산업이다.

시멘트 공장 보조 원료로 사용되는 폐타이어. ⓒ연합뉴스

시멘트는 소성로를 유연탄으로 가열하는데, 시멘트업계는 이를 폐자원 소각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시설 투자가 수반된다. 시멘트업계가 폐기물을 싹쓸이하는 바람에 재활용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비판이 등장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투자는 장기적으로 시멘트업계에 이득이다. NH투자증권이 7월9일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시멘트업계는 폐자원을 연료로 활용하면서 세 가지 사업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유연탄 사용이 줄어 연료비를 줄이고, 폐기물처리 수수료를 얻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잉여 탄소배출권을 확보해서 이를 판매할 수 있다. 정부의 탄소 저감 정책과 환경규제로 인한 비용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수입원 다변화를 위한 장기 투자책이기도 한 셈이다.

정부의 ‘수입 시멘트’ 지원을 두고 일각에서는 국내 시멘트업계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산 시멘트를 수입하더라도 운반비와 설비투자, 수입사의 마진을 감안하면 막상 국내 시장에서 국산 시멘트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시멘트는 무게 대비 단가가 비싸지 않기 때문에 무역 이점이 적은 편이다. 특히 정부가 10월2일 ‘지원책’으로 내놓은 것도 ‘품질 인증’ ‘항만 저장시설 설치 절차 단축’ ‘내륙 유통기지 확보’ 등 중장기적으로 시스템과 인프라를 신설·보완하는 내용에 가깝다. 당장의 가격 안정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멘트 산업의 특수성 때문에 정부가 시멘트업계를 강하게 압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시멘트는 원료와 가까운 곳에서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석회석이 많은 충북·강원 지역에 공장이 즐비해 있다. 지역 정치권은 지역에 기반을 둔 시멘트 기업들이 수입 시멘트로 인해 도산할 우려가 있다며 걱정한다. 충북 제천·단양을 지역구로 둔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이 9월25일 “저가 중국산 시멘트를 수입하는 결정이 국내 시멘트업계 실적 악화와 투자 감소,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산 요소수 사태 같은 불행한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 소멸 시대에 지역 거점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수입 시멘트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개별 지역 입장에서는 중요한 이슈다.

산업 필수재인데, 생산 과정에서 폐기물을 처리하고 원료 특성상 운반비가 많이 들며 비수도권 지역 거점 산업이다. 이런 시멘트업계의 특성은 ‘수입 시멘트 반대’에 대한 반발에 정당성을 실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멘트업계의 이러한 ‘꽃놀이패’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자원순환 생태계의 포식자가 되었고, 가격 협상력이 강화되었으며, 설비투자에 따른 장기적 이익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수입 시멘트 논란은 이러한 시멘트 산업의 다층적인 측면을 고민하게 한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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