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33] 왜 ‘승락’하지 않을까
세상 참 편케 해준 인터넷도 성가실 때가 있다. 무슨 큰일 난 듯 제목 붙인 내용 들여다보면 시답잖기 일쑤. 한두 번 겪고는 애써 외면해 보건만, 시시콜콜한 게 하도 많아 거르기 수월치 않다. 유명인 이혼(離婚) 소식이 그중 하나. 끝 모를 뒷얘기에 상식으로 박힐 판이다. 그 헤어짐을 나타내는 ‘離’는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첫음절이 아니면 본음 ‘리’로 적는다는 것이야말로 상식. 해서 ‘이륙, 이직, 이탈’로 쓰다가 ‘거리, 난리, 분리’로 쓰는데….
이쯤에서 궁금증이 스칠 법하다. ‘승낙(承諾)’은 왜 ‘수락, 허락’ 하듯이 ‘승락’으로 쓰지 않을까. 諾의 본음이 ‘낙’이기 때문이다. ‘수락, 허락’은 그럼? 한글맞춤법 제6장 제52항을 보자.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 그러니 본음 ‘수낙, 허낙’ 대신 입에 굳은 ‘수락, 허락’으로 쓴다는 얘기. 발음을 쉽게 하려고 변화를 주는 활음조(滑音調) 현상으로 본음과 다른 소리가 굳은 것이다.
‘곤란(困難)’ ‘논란(論難)’도 두음법칙과 헷갈리기 십상. ‘난독, 난망, 난해’ 따위로 쓰는 걸 보면 원래 음이 ‘란’인데 첫음절에서는 ‘난’으로 쓰는가 싶지만, 難의 본음은 ‘난’이다. 단지 극소수 낱말의 발음이 변했을 뿐. ‘노기’ ‘노발대발’ 하다가 ‘대로(大怒)’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 하는 것 역시 활음조가 낳은 표기다.
일반명사만 그러느냐면? 백제 무령왕(武寧王), 충남 보령(保寧), 경남 의령(宜寧) 등의 寧은 ‘안녕’에서 보듯 본음 ‘녕’이 바뀐 것이다. 며칠 안으로 뜨겁게 타오른다는 한라(漢拏)산은 어떨까. 拏 역시 본음이 ‘나’인데 활음조 현상으로 ‘라’가 됐다. ‘다를 이(異)’ 품은 ‘지리산’도 ‘이’의 극소수 예외.
북한산 28일, 계룡산 29일, 속리산 30일. 명산마다 단풍 절정기가 코앞인데 10월은 속절없이 떠나는구나. 잘 가시게. 11월의 무등산·내장산도 있으니. 아, 시월(十月) 그대도 활음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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