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노위로 번진 '김건희 국감'...영풍 장형진 고문에 여야 맹공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종합감사에선 그동안 환노위 안건으로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김건희 여사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정부가 용산어린이정원에 개관한 어린이환경생태교육관이 김 여사와 세계적인 명성의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의 만남을 위해 급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증인으로 출석한 장형진 영풍 고문은 본인이 ㈜영풍의 소유주가 아니라고 주장해 여야 의원들이 이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환노위의 환경부 종합감사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현재 어린이환경생태교육관에 '제인 구달 특별관'이 설치돼 있다. (특별관) 중앙에는 김건희씨 사진이 걸려 있고 심지어 반려견 사진까지 걸려 있다"며 환경부가 김건희씨 버킷리스트를 해결해주는 기관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번 사업에 김건희씨가 다 등장한다"고 주장했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 의원의 발언 직후 "(김 여사는) 자연인이 맞고 '영부인'이란 표현 역시 구시대의 표현이 됐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국정감사가 됐으면 좋겠다"며 "수차례에 걸쳐 '김건희씨' 하는 표현은 가려서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용우 의원이 "각자의 판단과 표현은 자유로운 것이다. 이미 국민적 평가가 '김건희정부' 혹은 '윤건희정부' 이런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맞받아치자 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김형동 의원은 "(이런 식으로 격의 없이 말할 거면 차라리) 욕을 하시라"고 힐난했고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다른 상임위(상임위원회)와 달리 환노위에서는 (여야가) 협조적인 감사가 이뤄져 와서 당의 지령을 받은 것이냐"고 했다. 이후 안호영 환노위원장의 중재 아래 김태선 민주당 의원이 "이용우 의원이 지적한 본질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요구했고, 김형동 의원이 "김건희 여사가 아닌 김건희씨란 호칭이 과하다는 주장을 밝혔을 뿐"이라며 "야당 의원들의 말처럼 의원 개개인의 주장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하는 선에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이용우 의원은 이날 본인에게 주어진 질의 시간 대부분을 어린이환경생태교육관 관련한 질문에 할애했지만 큰 소득을 보진 못했다. 2022년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으로 근무한 이병화 환경부 차관은 "김건희 여사를 비롯한 어떤 누구의 요구로 진행된 사업이 아니다"라며 "김 여사와 구달 박사의 만남 아이디어는 대통령비서실이 냈고, 구달 박사가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기념이 될 만한 일을 남기자는 생각으로 용산공원 내에 기념식수도 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차관의 반박에도 이 의원이 다양한 관점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지속해서 요청하자 여당 소속의 김형동 의원은 "살아 있는 사람의 위인전이 제작된 게 국내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도고 세계적으로는 구달 박사가 이에 포함된다"며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서울에 변변한 교육시설이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인의 (방한에 맞춰) 예산을 매우 조금 들여 어린이환경생태교육관이 건립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을 놓고 팽팽히 맞선 여야는 장형진 영풍 고문이 증인으로 출석하자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풍은 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의 운영사다. 1970년 문을 연 석포제련소는 그동안 각종 유해물질 유출사고와 중대재해를 일으켜 환노위의 지탄을 받아왔다. 환노위는 그간 영풍 경영진을 다수 증인·참고인으로 소환했으나 변화한 게 없었다는 이유로 회사 소유주(동일인)인 장 고문을 이번 국감의 증인으로 채택했다. 한 차례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다 재소환이 결정된 장 고문은 이날 오후 국감장에 들어섰다.
여야 의원들은 출석한 장 고문을 향해 사과를 요구했다. 장 고문은 "여러 사유로 앞선 국감에 출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영풍 주식) 공개매수가 9월 13일부터 10월 23일까지 진행돼 (일본 출장길에 오를 수밖에 없어 불참한 점을) 양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불참한 사유에 대해서만 사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자 장 고문은 "국민과 (석포제련소 인근) 주민에게 송구하고 송구하고 또 송구하다"라고 답했다.
장 고문은 본인이 영풍의 소유주가 아님을 강조해 여야 모두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다. 장 고문은 "2015년 퇴임 후 경영은 전문경영인(CEO)에 맡겨 왔으며 지분도 자식들에 증여해 미미한 지분율만 남은 상태"라며 "자녀들도 나이가 50 전후기 때문에 제 뜻이 아닌 각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며 회사에 대한 본인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점을 적극 어필했다.
장 고문의 이런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고였던 경기 양주시 채석장 붕괴 사고로 검찰 조사를 받던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재판에 넘겨진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검찰은 사고 사업장을 운영하는 삼표산업 대표이사가 아닌 정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판단하고 기소했다. 현재 영풍은 노동자 사망사고로 인해 박영민 석포제련소 대표와 배상윤 석포제련소장이 지난 8월 구속된 상태다.
여야 의원들도 장 고문이 실질적인 소유주임을 증명하기 위해 집중 추궁하는 모습을 보였다. 환노위에서만 9번째 국감을 치르고 있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1997년 한보 청문회에서 정태수 회장은 '내가 다 알지 머슴(임원)들이 뭘 아느냐'고 했는데 장 고문은 이보다도 못한 인물이냐"고 다그쳤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1970~1980년대 지역을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인의 역할을 존중한다"며 "그런 면에서 장 고문은 (회사의)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 아니냐"고 거듭 물었지만, 장 고문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장 고문은 국감장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발언할 기회를 달라고 안호영 환노위원장에 요청한 뒤 "핑계를 대는 것도 아니고 피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살아왔다. 누구를 괴롭히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살아왔다"며 "(석포제련소가 개선해야 할 사안들은) 솔직히 얘기해서 빨리 되고 있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포제련소 주변 환경정화 등을 위해) 회사가 4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고 앞으로 2000억원을 더 투자할 것"이라며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안정준 기자 7up@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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