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실태조사
최근 행정복지센터가 편지를 보내왔다. 1인 가구 등 위기·취약 계층 발굴을 위한 실태조사 안내였다. 조사근거(법률과 조례), 조사내용(고독사 위험군 및 취약계층 발굴을 위한 실태조사), 조사기간(2024년 7~11월), 조사대상(중년 1인 가구)이 적혀 있었다. 특히 조사 참여 방법이 세 가지로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첫째, QR 코드 스캔을 통한 온라인 참여. 둘째, 방문조사원을 통한 참여. 셋째, 행정복지센터 방문 및 유선 연락을 통한 참여. 실태조사표에선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소, 거주지, 1인 가구 사유, 근로 사유 등 실태조사의 독립변수로 활용할 항목을 묻는다. 질문 내용은 10개며, 답은 1(예)과 0(아니요)의 2점 척도다. 예를 들어 “지난 1주 동안 평균 하루 한 끼 식사도 하지 않았다”에 ‘예’ 아니면 ‘아니요’로 답하게 되어 있다. 10개 질문에서 10점 이상이면 고위험군, 8~9점이면 중위험군, 6~7점이면 저위험군, 0~5점이면 해당 없음이다.
이걸 보니 최근 정부 지원 연구소 사업에서 탈락한 이유가 떠올랐다. 양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질적 방법만 사용하겠다고 해서 탈락시켰다. 고민하다가 이의 신청을 냈다.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아온 질적 연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 같았다. 계획서에 분명히 양적 연구를 수행하겠다고 적은 증거를 제시했다. 피상적인 정보 수집에 머문 기존의 양적 조사를 보완하기 위해 질적 연구도 함께 수행하겠다고 적은 사실도 밝혔다.
답변이 왔다. “질적 연구를 강조함과 더불어 실태조사 또한 여러 측면에서 놓치지 않고 (양적 연구 포함) 살펴보겠다고 하였지만, 당초 계획서에 연구자님께서 언급하신 ‘실태조사’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실태조사를 통한 자료 수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 시행계획이 질적 접근과 비교하여 다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태조사 계획을 자세히 적지 않아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아니, 누가 연구계획서에 실태조사 계획을 하나하나 자세히 적어서 제출하나?
앞의 행정복지센터에서 보내온 실태조사에는 2점 척도의 10개 질문이 들어가 있다. 이런 낮은 수준의 정보를 수집하는 ‘구체적 시행계획’을 연구계획서에 자세히 적지 않았다고 탈락시켰다? 사회조사를 단 한 번만이라도 직접 해본 연구자라면 이러한 ‘최종 심사문’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바로 안다. 5점 척도의 수십 개의 질문이 있는 조사도 연구계획서를 쓸 때는 구체적 시행계획을 자세히 적지 않는다. 이미 절차가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가 설문 문항을 만들면 대개 리서치 회사에 실제 조사를 맡긴다. 실태조사도 다르지 않다. 질문 내용을 연구자가 만들면 리서치 회사에 맡기거나, 직접 편지를 발송한다. 응답률이 낮을 것은 뻔하다. 방문 조사를 하려면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태조사가 얕은 정보를 부실하게 수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도 실태조사를 하는 것은 얕은 부실한 지표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태조사를 실마리 삼아 더 깊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정부가 주도하거나 지원하는 연구기관이 지나치게 숫자와 도표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실태조사로 아무리 숫자와 도표를 끌어모아도 결국 해석을 해야 한다. 통계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기껏해야 가설 검정에 머문다. 하지만 사회적 삶의 의미는 가설 검정처럼 단순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인간 경험의 전체’를 행위자가 부여하는 의미의 차원에서 탐구하려면 질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질적 방법은 숫자가 말해주지 않은 일상생활의 ‘암묵적 지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암묵적 지식은 실태조사만으로는 결코 밝혀낼 수 없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가 서로 보강해야 하는 이유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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