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기후위기 시대의 야구
프로야구 코리안시리즈 1차전이 경기 중반에 중단되었다가 또 하루를 연기해서 더블헤더로 치러졌다. 가을 날씨답지 않게 쏟아진 폭우 때문이다. 이번 가을야구는 선수뿐 아니라 관중들에게도 큰 고생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올해 야구는 정규시즌도 순탄하지 못했다. 길게 이어진 장마로 우천 취소가 속출했고 폭염으로 경기가 제날짜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도 세 번이나 발생했다. 경기장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관중들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상황도 몇 차례나 있었다.
기상 현상으로 영향을 받는 스포츠는 야구뿐만이 아니다.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푹 파인 잔디 상태가 논란이 되었는데, 폭염이 잔디 생육을 어렵게 한 게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스키장은 겨울철 적설량이 부족해 인공 제설이 일상화되고 있다. 2018년 열린 평창 올림픽은 남한에서 열리는 마지막 동계올림픽이 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일회적인 게 아니며, 야외 스포츠에 더 잦고 큰 교란과 제약이 생길 게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가 야구에 나쁜 소식만 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31일 두산과 기아의 경기는 30 대 6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를 남겼는데, 온난화가 대기 밀도를 낮추어 타구를 더 멀리 날아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 기사가 나왔다. 홈런이 많이 나오는 경기는 팬들을 즐겁게 한다. 동계훈련도 애리조나나 오키나와까지 가지 않고 한반도 남해안에서 소화하는 구단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변화한 기상 조건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구단에 많은 고민을 안긴다. 선수들에게 올스타전 직후 ‘기후 방학’을 길게 주자는 아이디어도 있고 여름철 평일 야간 경기를 한 시간 늦춰 7시30분에 시작하자는 제안도 있다.
내가 기후위기 강의 때 자주 보여주는 동영상 중 하나가 영화 <인터스텔라>의 첫 부분이다. 2067년의 어느 날 뉴욕 양키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경기가 초라한 야구장에서 열리고 있다. 경기 도중 멀리서 모래폭풍이 몰려오고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기는 취소된다. 그런데 관중들은 놀라지도 동요하지도 않는다. 그런 일들은 늘 겪는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대피한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야구동호회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 장면이 정말 프로야구팀 경기인지, 사회인 야구가 아닌지 하는 토론이 벌어졌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가까운 미래의 프로야구 경기장을 묘사한 것이지만, 기후변화가 스포츠와 산업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그토록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기 어려워했다.
프로야구의 기후위기 적응은 어떻게 가능할까? 돔구장을 짓는 게 한 가지 대안이다. 그러나 영어 표현인 ‘베이스볼’이든, 일본식 한자 조어인 ‘야구’든 간에 야구의 본성은 개방된 야외에 큰 다이아몬드를 그리고 진행하는 놀이다. 모든 야구팀의 경기와 훈련을 돔 안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돔시티’가 조만간 가능하거나 우리 모두를 수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후위기 적응은 이제 프로야구 1000만 관중에게 자신의 일이 되었다. 야구에서도 그렇듯이 적응의 방법을 알려주는 기성의 매뉴얼은 없다. 올해 야구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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