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제’ 브레이크…환경 시계 거꾸로 돌린 환경부

김기범 기자 2024. 10. 2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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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부담 이유로 질질 끌다 “전국 확대 계획 없다”
지자체 자율에 맡길 듯…“사실상 제도 포기한 것” 비판
보증금 반환용 바코드가 부착된 커피숍의 일회용컵. 연합뉴스

환경부가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시행 중인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전국에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자체들이 자율적으로 실시토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환경단체들은 사실상 제도를 포기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종합감사에 출석해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관련해 “현 제도를 획일적으로 전국에 확대하는 것보다는 단계적, 점진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실무 협의·논의 중인 안으로 국회·지자체·업계 등과 협의 후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에서 ‘보증금제를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환경부는 지자체가 여건에 맞게 대상·기준·방식 등을 정해 조례나 업체들과의 협약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보증금 액수도 지자체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을 때 내는 보증금은 300원으로 규정돼 있다.

환경단체들은 “지자체 자율을 빙자한 정책 포기”라고 지적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지자체 여건에 맞게 맡기겠다는 것은 20년 전으로 퇴행하겠다는 것”이라며 “2003년부터 2008년 사이 실시됐던 일회용컵 보증금제 자율 시행은 이미 실패로 끝났는데, 과거의 실패를 알면서도 다시 자율 시행한다는 것은 제도를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수 지자체들은 이미 중앙정부가 제대로 된 원칙을 마련해놓지 않으면 보증금제 시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제주와 세종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당초 2022년 6월10일부터 전국에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환경부는 소상공인들의 부담 등을 이유로 제주·세종에서만 시범사업을 했다. 지난해 8월 감사원은 녹색연합이 청구한 공익감사를 통해 “자원재활용법 개정 취지에 맞게 보증금제를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환경부는 일회용컵의 재활용 가치가 낮으며, 보증금제의 효과가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재활용 가치가 ‘1개당 4.4~5.2원’에 불과한데 보증금제를 시행하기 위해 매장이 부담하는 컵 처리 비용은 1개당 43~70원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보증금제를 통해 일회용컵을 따로 모으면 ‘고품질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환경부는 보증금제를 도입한 2020년에는 “일회용컵 회수율이 높아지고 재활용이 촉진되면 온실가스를 66% 이상 줄일 수 있어 연간 445억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9월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설계될 당시 담당 과장이던 이병화 환경부 차관의 입장에 대한 질의도 나왔다. 이 차관은 “그 당시에는 폐비닐 수거 중단 등으로 인해 일회용컵, 플라스틱을 줄이고 수거해서 재활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보증금제를 설계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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