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장맛이 진짜가 아니라서

기자 2024. 10. 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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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경기 이천의 한 식당에서 장독대 구경을 했다. 주인은 정작 자기가 만든 음식보다 옹기 내용물에 자부심이 더 커 보였다.

한 항아리를 열자 아주 달큼하고 미묘한 냄새가 풍겼다. 어렸을 때 큰집 장독대에서 나던 그 냄새, 어쩌면 학교 앞 뽑기집에서 나던 설탕도 태우고 애도 타던 그 냄새처럼 캐러멜의 매력이 나오기도 했다. 주인 말씀이 “100년 넘은 씨간장”이란다. 친정집에서 한 독을 받아 그걸 더 익히고, 거기에 새 간장을 부어 가르고, 더하여 잘 숙성된 씨간장 맛을 지키고 있다는 얘기였다. 음식 맛이 보통 아니었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간장과 된장, 어장을 담아 먹은 역사가 오래다. 문명은 장으로 시작되었다. 보통 북방지역인 베이징과 산둥 쪽은 된장, 더운 아래쪽 지방은 간장이 주력이었다. 그 북방의 된장이 바로 한국에 와서 짜장면의 원료인 춘장이 되었다.

어쨌든 ‘북된남간’이 표준인데 한반도는 된장도 간장도 각기 발전시켜왔다. 한국 어느 종가를 가든 남북 지역과 관계없이 된장과 간장이 다 있다. 한국의 맛이란 건 사실 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장맛은 거의 찾기 힘들다. 공장에서 만든 현대식(일본식) 된장이 99.9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진간장은 원래 우리 재래 간장의 한 종류였는데 시중에서는 대량생산한 공장 간장을 의미한다. 국가가 인증하는 한식조리사자격증 시험을 치려면 정해진 조리법을 따라야 한다. 이때 양념 배합은 진간장과 설탕으로 한다. 물론 그 진간장은 일본식에서 기원한 공장 제품 기준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양복 입고 살듯이, 음식도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가게 마련이고 어렵던 시절에 공장에서 만든 염가의 장이 우리 식탁을 지켜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우리 장을 볼 수 없다. 슬픈 얘기다.

요즘 유튜브가 식당이나 집집의 맛을 ‘책임’지는 모양이다. 인기 있는 조리법을 보면 당연히 공장의 장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뿐만이 아니라 굴소스며 ‘치킨스톡’ 넣는 것이 표준이 되었다. 염가로 만들어 손님 혀에 단 음식을 만들자면 도리 없는 일일까. 우리 혀는 이미 이러한 ‘황금비’ 조합에 절어 있다. 입에 맞으면 그만이라는 건 일종의 실용주의일 텐데, 획일화에 반대하여 복잡하고 어려운 음식을 지키고 그 재료를 보존하고 고생하는 일은 어쩌면 인류에게 닥친 ‘노아 방주’적인 숭고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행동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한 살림이나 여러 생활, 생산과 소비 조합 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은 불행하게도 힘이 약하다.

우리 맛을 지키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사라진다는 건 아프지 않은가. 한글과 우리말을 지키자는 데는 기꺼이 비분강개하는 우리가 왜 우리 맛을 지키자면 외면하고 있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장은 이제 민속박물관에 수장되거나 전시되는 운명에 처할 것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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