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음미하는 소·산책하는 경주마…‘생추어리’를 느끼다[책과 삶]

김한솔 기자 2024. 10.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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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자리
김다은·정윤영 글 | 신선영 사진
돌고래 | 352쪽 | 2만2000원

소, 곰, 말, 돼지는 인간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누구나 소, 곰, 말, 돼지의 생김새를 안다. 어떤 사람은 무슨 맛이 나는지도 안다. 대체로 그게 다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대동물은 이미지로 존재한다. 말들이 자유롭게 평원을 달리는 영상, 곰 인형, 마트의 형광등 불빛 아래 진열된 소와 돼지의 빨간 살. 이런 것들은 산책로에서 만나는 개나 고양이만큼 애틋하지 않다.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에 사는 꽃풀소 머위와 메밀이. 신선영씨 제공

<동물의 자리>는 소, 곰, 말, 돼지 ‘생추어리’(동물보호구역) 르포집이다. 생추어리에는 식용, 약용이었던 동물들이 살고 있다. ‘육우’로 불렸던 소는 생추어리에서 ‘꽃풀소’라는 이름을 얻었다. 폐교에서 꽃과 풀을 뜯어 먹고 운동장을 달린다. 사육장에서 밤낮없이 쓸개 채취를 당하던 곰들은 처음으로 ‘겨울잠’을 자본다. 트랙에서 전속력으로 뛰던 퇴역 경주마들이 천천히 숲을 거닐며 하루를 보낸다. 종돈장에서 공개 구조돼 유명해진 돼지, 새벽이는 인간보다 2000배 민감한 코를 마음껏 활용한다. 건초의 쌉싸름한, 흙의 싱그러운 냄새를 맡다 기분이 좋으면 꼬리도 흔든다.

‘너무 이상적’으로 보이는 생추어리라는 공간을 지속되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활동가들의 단단한 현실감각이다. “활동의 동기는 분노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

성실한 기록 사이사이에 오랜 시간 대상을 관찰하다 비로소 셔터를 누른 것 같은 사진이 있다. 사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동물의 털이다. 소털은 사실 사람 손이 파묻힐 만큼 길다는 것, 돼지의 눈썹도 말 눈썹처럼 부드럽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쩐지 뭉클해진다. 납작한 이미지였던 대동물들이, 비로소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숨을 내뿜는 생명으로 다가온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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