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브루노 마스의 ‘아·파·트’
한국에서 아파트는 1930년 서울에 처음 등장했다. 1970년대 서울 용산에 들어선 한강맨션은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물이 쏟아지며 ‘아파트=편리함’이란 인식을 강화했다. 가수 윤수일이 1982년 ‘아파트’를 발표할 때만 해도 전체의 5%에 불과했던 아파트 주거율이 지금은 전체의 절반 이상으로 늘었다. 이러니 아파트를 빼고 한국인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문학작품 중에 아파트를 다룬 소설이 유난히 많은 것도 한국적인 현상이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나 박완서의 ‘마흔아홉 살’은 대도시 아파트에 사는 한국 중산층의 고독과 위선, 물욕 등을 다룬 작품들이다. 외국인도 한국을 알고 싶다면 ‘똘똘한 한 채’ 같은 단어가 지닌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식 재테크, 교육열, 중산층 문화를 분석하는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낸 프랑스인도 있다.
▶한국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아파트’라는 한국식 공동주택 이름을 낯설어한다. ‘아파트먼트’라는 영어 단어가 있기는 하지만 누가 이를 줄여서 ‘아파트’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형태의 주택을 영국에선 플랫(flat), 미국은 콘도(condo)라 한다. ‘아파트’는 외국인들이 발음하기도 어렵다. 특히 영어는 단어 끝에 ‘으’ 발음이 없다. ‘데이빗(David)’이라고 하지, ‘데이비드’라고 하지 않는다.
▶걸그룹 블랙핑크 가수 로제가 지난주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낸 곡 ‘아파트(APT.)’가 세계 젊은이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선 브루노 마스가 정확한 발음으로 ‘아~파트, 아파트’를 반복해 외친 것이 화제가 됐다. 마스뿐 아니라 그 노래에 매료된 전 세계 청년들이 한국 발음으로 ‘아파트’라고 따라 하는 동영상도 퍼지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건배 건배’ ‘소맥’처럼 한국의 음주 문화와 관련된 어휘, 로제와 마스가 두 손을 겹쳐가며 재현한 한국의 아파트 게임 밈(meme·유행 동영상)도 번지고 있다.
▶과거 한국인이 외국에 나갈 때면 ‘아파트’는 콩글리시라 쓰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어느덧 외국인이 한국식 명칭을 이해하고 발음도 한국인처럼 하려 애쓴다. 미국의 패션 월간지 ‘보그’도 최근 로제를 인터뷰한 기사에 “이 곡은 로제가 한국 태생이란 사실을 존중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식 ‘apateu’로 발음한다”는 설명과 ‘아파트’라는 한글을 병기했다. 외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 항목에 아파트 명칭과 발음법도 포함됐다. K컬처가 전 세계로 얼마나 뜨겁게 퍼지는지 보여주는 문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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