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은 한국 근현대사 자료 보고…국가가 연구 지원을”

박민희 기자 2024. 10. 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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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헝가리국립아카이브 동아시아연구소장 김보국 연구교수
김보국 헝가리국립아카이브 동아시아연구소장이 23일 서울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민희 선임기자

김보국 헝가리국립아카이브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가끔 “김보국이란 이름의 동명이인이 세 명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도저히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혼자서 묵묵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한국 문학작품을 헝가리어로 옮겨 현지에 소개했고, 헝가리 문학작품 ‘세렐렘’ ‘장미 박람회’ ‘여행자의 달’ ‘도어’ 등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헝가리 국립아카이브(문서보관소)에서 냉전 시대 북한, 한반도와 관련한 방대한 자료를 계속 발굴해 해제를 붙여 출판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찾아낸 헝가리 국립문서보관소의 한반도 관련 자료는 12만~13만 쪽 정도다. 이 자료를 토대로 그는 ‘헝가리 외교기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 ‘헝가리 외교문서로 본 북한의 문예’ ‘남북한 관련 헝가리와 불가리아의 외교문서-동유럽이 기록한 해방 전후의 한반도 1945-1956’(공저) ‘헝가리의 북조선 관련 기밀해제문건’(공저) 등의 연구물을 계속 펴내고 있다.

이런 그의 업적에 주목한 헝가리 정부가 김 소장에게 헝가리 공로훈장인 기사십자훈장을 수여한다. 오는 28일 주한 헝가리문화원인 리스트문화원에서 쎄르더헤이 이슈트반 헝가리 대사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국외국어대에서 헝가리어를 전공한 뒤 헝가리 외트뵈시롤란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소장은 헝가리 엘테대학 한국학과에서 10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헝가리에 냉전시기 북한을 상세하게 기록한 방대한 한반도 관련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을 찾아 읽고 연구하다 보니 너무 흥미로워서 계속 빠져들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성균관대 동아시아 학술원 연구교수이기도 한 그는 2021년 초에 헝가리국립아카이브에 동아시아 연구소가 설립될 때 소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금은 한국과 헝가리를 오가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헝가리는 1948년에 북한과 일찍 수교했고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1950년 7월에 북한에 최초로 의료단을 파견했고 북한으로부터 전쟁고아와 유학생도 많이 받아들일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1956년 헝가리가 소련에 맞서자 평양에서 반 헝가리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복잡한 역사의 부침 속에서 헝가리 외교관과 학자들은 북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비판적 시각으로 북한을 관찰하면서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그 자료의 보고를 발굴하고 연구해온 이가 김보국 소장이다.

헝가리 대학 교수 때 아카이브에서
한반도 자료 12만 쪽 이상 찾아내
‘…북한의 문예’ 등 잇단 저작 내
‘북으로 간 음악가’ 김순남 사진도
“독립운동 도운 인물들 흔적 찾을 터”

그는 북한으로 갔던 예술가들이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흔적을 헝가리 문서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월북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김순남의 사진을 발견해 그의 외동딸인 방송인 김세원씨에게 이메일로 보내드렸다. 김세원씨는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책도 썼지만 월북 뒤 아버지의 사진을 한장도 구할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냉전과 분단에 휩쓸렸던 한반도 사람들의 흔적도 계속 발굴해왔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헝가리에 유학 왔던 북한 청년이 1956년 헝가리에서 일어난 ‘부다페스트의 봄’ 반소련 혁명의 와중에 총을 들고 소련 군대와 싸웠다가, 유고슬라비아와 스위스로 망명을 했다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결국 북한으로 되돌아간 기구한 사연도 있었다.”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1986년 헝가리에서 머물다가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왔던 상세한 기록도 찾아냈다. 신상옥 감독은 헝가리에서 칭기스칸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려 하다가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탈출했다. 1989년 한국과 헝가리 수교 당시 북방외교의 주역이었던 박철언씨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는 신임장을 직접 가지고 와서 수교 협상을 했고, 헝가리 정부가 KAL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가 헝가리에서 머물렀다는 증거를 한국에 제공하면서 협상을 성사시켰다는 상세한 내막도 그의 연구 성과다.

김보국 소장. 박민희 선임기자

김 소장은 최근에는 헝가리 외에도 체코, 폴란드 등 주변 동유럽 국가들의 문서보관소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붕괴하면서 방대한 자료가 공개되었는데도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 그 자료들을 제대로 살피고 연구하는 작업이 없었다는 사실이 답답하다”며 “한국 정부나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이런 작업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에선 정부 지원을 받아 이미 많은 연구자가 헝가리 국립문서보관서에서 많은 자료를 발굴했다. 중국은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의 체제전환(사회주의 붕괴) 사례를 많이 연구했고, 일본은 제국시절부터 발전시켜온 지역학 연구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 우리도 우리 관점에서 이 자료들을 더 연구했으면 한다.”

최근 그가 힘을 쏟고 있는 또다른 작업은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동유럽 인물들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독립운동사를 보면 체코여단이 한국 독립군에게 폭탄 제조법을 알려줘서 독립군의 무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나온다. 영화 ‘암살’에는 독립군에 포탄 제조를 알려준 전문가가 마자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헝가리와 체코의 자료를 연구해 독립군을 도왔던 그 인물들을 찾아내고 싶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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