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독대 논란과 고독한 결단

김광덕 논설실장·부사장 2024. 10. 2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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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면담’ 與 수뇌부 내분, 국민 절망
조선시대 ‘밀실’ 부작용 탓 ‘독대 금지’
尹 반환점에 전면 쇄신 중대결심해야
복합위기 증폭, 韓 ‘자기 정치’ 자제를
[서울경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용산 독대(獨對)’를 둘러싸고 세상이 시끄럽다. 나라가 복합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기 싸움만 벌이고 있다.

독대는 원래 벼슬아치가 홀로 임금을 만나 현안에 대해 의견을 아뢰던 행위를 뜻한다. 한 대표는 한 달여 동안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결국 독대는 성사되지 못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21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면담을 가졌다. 회동을 둘러싼 줄다리기 과정에서 여권의 1·2인자 모두 국민들을 답답하게, 절망하게 만들었다. 세간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해 “집권당 대표도 쉽게 만나주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한 대표에 대해서도 “3대 요구를 공개적으로 해 놓고 독대를 굳이 고집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제왕적 대통령’들은 독대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밀실 정치 타파’를 명분으로 독대 금지령을 내렸다. 역대 정권에서 계속돼왔던 국가정보원장의 정기적인 독대 보고도 없앴다. 당시 청와대 핵심 참모를 지낸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달리 국정원장의 보고를 부정기적으로 받으면서 대통령비서실장을 배석시켰는데 기록을 위해 부속실장 등도 참석시켰다”고 전했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종종 독대가 있었는데 세종은 신하들과 연쇄적으로 독대하는 ‘윤대(輪對)’를 즐겼다. 그러나 성종 때부터 사관(史官)이 배석하지 않는 독대는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효종이 송시열과 북벌을 논의한 ‘기해독대’와 숙종이 이이명과 후계 문제를 논의한 ‘정유독대’는 특이한 사례다. 훗날 송시열은 숙종에 의해, 이이명은 경종에 의해 사사(賜死)됐다. 독대가 ‘독배’로 이어진 셈이다. 독대는 허심탄회한 소통 채널이 될 수 있지만 대화 내용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한 정치학자는 “독대의 장점을 살리려면 만나는 두 사람이 깊은 신뢰 관계여야 한다”고 했다.

‘유사(類似)독대’를 가진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독배’를 마시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서로 신경전을 멈추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회동 다음 날 윤 대통령이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한 것이나 한 대표가 친한계 의원 20여 명과 세 과시 모임을 가진 것은 모두 민심과 동떨어진 모습이다.

경제·안보 위기 쓰나미가 밀려오는 가운데 거대 야당이 탄핵 공세를 노골화하는 지금은 더더욱 여권이 집안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핵·미사일 고도화로 무장한 북한은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하는 한편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워 한국을 겨냥한 도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리 경제도 주춤거리고 있다. 올해 3분기 경제는 전 분기보다 0.1% 성장하는 데 그쳐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된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으로 K반도체는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미국 대선과 맞물려 증폭되는 복합 리스크를 극복하려면 정부·여당부터 중심을 잡고 국력 결집에 나서야 한다.

국력을 모으려면 등 돌린 민심을 회복해야 한다. 여권은 내분을 멈추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쇄신책을 마련해 실천해가야 한다. 무엇보다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변화가 절실하다. 비록 한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는 “정치적 인기를 노린 것”이라며 수용하지 않더라도 결코 민심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한 대표의 요구를 뛰어넘어 차원이 다른 전면적인 국정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건희 여사 논란과 관련해서도 특별감찰관 임명 수준에 그치지 말고 재발 방지 의지를 확실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 김 여사는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약속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또 실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몸을 던져 일할 수 있는 인사들을 중용함으로써 경제·민생 살리기에서 성과를 거둬야 한다. 그래야 국정 동력을 살려 연금·노동·교육·의료 등 4대 구조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다. 한 대표도 매서운 민심을 대통령실에 전하되 ‘자기 정치’에서 벗어나 실제로 일이 되게 풀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중대 결심’을 통해 난국 수습을 시도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인 11월 10일이 지나기 전에 전면 쇄신과 변화를 위한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한다.

김광덕 논설실장·부사장 kd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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