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1. 수원화성박물관

경기일보 2024. 10. 2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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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전 '임전필승(臨戰必勝) 조선의 무예서와 무예24기' 전시가 오는 12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장 전경. 윤원규기자

 

소나무가 아름다운 박물관 입구에 ‘2024년 수원화성박물관 특별기획전-임전필승! 조선의 무예서와 무예24기’를 알리는 깃발이 걸려 있다. 수원시의 한복판, 수원화성의 중심에 자리 잡은 수원화성박물관(관장 한동민)은 전국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 가운데 하나다. 평일에도 1천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기창, 당파 등 다양한 장병기가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

“군자는 싸우지 않으나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 정조가 즉위 초에 한 말이 가슴을 울린다. 정조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주도하고 최정예 부대 장용영을 창설한 임금이 아닌가. 특별전답게 볼거리가 풍성하다. ‘조선의 무관 선발과 무예’에 관련된 유물을 둘러보고 조선 최초의 무예서 ‘무예제보’가 전시된 곳으로 이동한다. 임진왜란 때 훈련도감 낭청 한교(韓嶠·1556~1627)가 편찬을 시작해 1598년 10월 완성한 무예제보는 국가유산 보물이다.

정조가 군제를 개혁하고 통일된 무예 훈련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 윤원규기자

프랑스에만 있고 국내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 귀중한 서적을 수원화성박물관이 입수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400년이 넘었으나 잘 보존돼 그림과 글씨가 선명한 것도 다행스럽다. 12년이 지난 1610년 최기남이 편찬한 ‘무예제보번역속집’을 비교해 본다. 1790년 펴낸 무예도보통지와 1785년 펴낸 ‘병학통’은 군대를 개혁하고 군사를 강화하기 위한 정조의 열망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무예제보의 손자뻘인 무예도보통지는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장관 백동수가 힘을 합쳐 편찬해 충실한 책의 내용 및 글씨와 그림의 아름다움이 최고 수준이다. ‘뎡니의궤’에 실린 ‘동장대시열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성 동장대에 친림한 정조가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이 그림은 조선의 군사훈련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말을 탄 장용영 친군위와 선기대가 학익진을 펼친 앞뒤로 원진(圓陣)과 방진(方陣)을 펼친 군사들의 모습에서 임전필승의 기운이 느껴진다. 평소에 보기 힘든 군사와 무예, 도검 같은 귀중한 유물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즐겁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쉽게 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인 거중기. 윤원규기자

■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2층 왼편에 있는 상설전시관인 ‘화성축성실’로 향한다. 화성 축성과 신도시 수원 건설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입구 오른편에 백마를 타고 황금 갑주를 입은 정조대왕의 행차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220여년 전 조선으로 안내한다. 정조 시대의 기록문화는 현대인들도 놀랄 만큼 상세하고 풍부하다.

공사 종합보고서라 할 ‘화성성역의궤’는 ‘원행을묘정리의궤’와 더불어 기록문화의 백미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즐비한 유럽에서도 화성성역의궤만큼 상세하게 기록된 공사보고서를 찾기 어렵다. 총 184권 100책이나 되는 문집 ‘홍재전서’를 남긴 정조는 출판문화를 한 차원 높였다. 63권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성화주략’이 실려 있다. 정조는 성곽의 크기와 높이, 주요 재료, 해자와 참호의 규격, 터를 쌓는 방법 등 화성을 쌓기 위한 여덟 가지 기본 방안을 제시한다. 물건을 운반하는 수레 유형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와 성벽 쌓는 방식까지 제시할 정도로 정조의 성격은 치밀하다. ‘수원화성 공사를 중지시키는 윤음(綸音)’은 정조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1794년 전국에 흉년이 들어 과연 공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한다. 신하들은 전국에서 모여든 일꾼들을 위해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만 정조는 굶주린 백성 구제가 먼저라며 공사 중지를 결정한다. ‘윤음’은 어려운 백성을 향한 정조의 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호랑이 두 마리가 수놓인 흉배를 가슴에 단 무관의 모습이다. 화성 성역을 감독했던 수원 출신 무관 김후(1751~1805)의 초상화다. 1796년 화성이 완공되자 정조는 김후에게 길이 잘 든 말 한 필을 특별히 하사하는데 이를 기념해 이 초상화도 그려준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편찬한 ‘뎡니의궤’는 현륭원 행차와 혜경궁 홍씨의 잔치, 수원화성 축성 등의 내용을 날짜 순서대로 기록했을 뿐 아니라 채색한 아름다운 그림이 실려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화성문화실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성 모형을 통해 각 성의 장점과 특색을 알아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 8일간의 화성 행차와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

화성문화실의 입구에 병풍 그림이 보인다. 1795년 을묘년 윤2월, 8일간 정조의 화성 행차와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을 보여준다. 을묘년의 8일간 화성 행차는 조선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흥겨운 축제였다. 정조는 아버지 묘소인 현륭원을 참배한 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의 환갑잔치를 벌인다. 낙남헌에서 지역의 노인을 초대해 양로연을 베풀고 밤에는 횃불을 켜고 끄는 군사훈련을 민관군이 함께 벌이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연이어 벌인다.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영의 무사들은 평소 무예와 진법을 익히고 선진 농법으로 국영 농장인 둔전을 경영한다.

‘봉수당진찬도’는 1795년 윤2월13일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펼쳐진 혜경궁 홍씨의 성대한 회갑잔치 장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잔치의 주인공 혜경궁 홍씨의 자리는 주렴으로 가려져 있다. 그렇다면 정조는 어디에 있을까. 병풍이 세워진 안쪽에 호피(虎皮) 방석이 깔린 곳이 정조가 앉은 자리다. 봉수당은 1795년 윤2월13일 조선 왕조 역사상 처음으로 ‘검무’가 공연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791년 73세의 번암 채제공 모습을 담은 ‘채제공초상 시복본’은 초상화의 백미이다. 화성 성역 총리대신으로 화성 축성을 이끈 주인공이며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직계 후손이 번암 선생의 유물을 기증해 박물관 건립의 초석이 됐다니 수원화성박물관은 복이 많다. 화려한 오사모에 분홍빛 단령을 입고 화문석 위에 앉아 있는 채제공의 표정이 행복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채제공이 자필로 ‘임금이 하사한 부채와 선추는 물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감싸고 있는 모든 것이 군주의 은혜’라고 쓴 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채제공의 왼쪽 눈이 약간 이상하다. 초대 수원유수 채제공에게 장용외사를 겸하도록 임명한 내용의 ‘전령(傳令)’을 살펴본다. 산처럼 보이는 정조의 ‘수결(手決)’도 눈에 들어온다. 장용영 장관 오의상이 받은 ‘고풍(古風)’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담겨 있다. 장창과 등패를 비롯한 무예24기의 다양한 무기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은과 백옥으로 장식한 ‘대모백은장 옥구보도’는 품격과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보검이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대왕이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건축된 계획 도시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아이들이 수원화성 모형을 보고 있다. 윤원규기자

■ 즐거운 배움터

1층 상설체험실과 정기교육실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교육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수원화성이 품은 옛이야기’를 비롯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백진주 학예연구사의 소개말을 들어본다. “2009년 4월 개관 때부터 유물 전시 위주의 운영을 넘어 전시와 교육, 체험이 어우러지는 박물관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이 최근 기획한 굵직한 전시회만 꼽아도 여럿이다. ‘번암 탄생 300주년 기념 수원화성박물관·실학박물관 공동기획전-재상 채제공, 실학과 함께하다’를 비롯해 ‘정조대왕 서거 220주기 기념 사진전-융건릉 원찰 수원 화산 용주사’, ‘테마전-1950년대 수원, 전쟁의 상흔과 또 다른 시작’, ‘정조대왕 탄신 2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독서대왕 정조의 글과 글씨’, ‘세계유산축전 기념 테마전-위대한 기록과 수원화성’ 등 주제와 내용이 다양하다. 공방거리에 있는 열린문화공간 ‘후소’의 전시와 운영도 박물관이 맡고 있다. 10대 공립박물관으로 선정되고 해마다 우수박물관으로 선정되는 수원화성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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