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위험성 평가?…폭염 때 휴게실 건의했다가 팀 전원 해고"(종합)
"22%가 위험성 평가 1번도 실시 안해"
"노동자 참여 배제…34%가 보장 안돼"
현장 증언도…"배달업 위험성 평가 '0'"
"노동조합 참여 의무화…미실시 처벌"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중대재해 처벌보다 예방'을 내건 정부의 위험성 평가 제도가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4일 오전 '위험성 평가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현장 증언대회'를 개최하고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위험성 평가는 기업 스스로 안전보건 관리 및 책임을 지는 예방체계다. 정부가 2022년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날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23명이 숨진 아리셀 대참사로 현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위험성 평가 제도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도의 문제점은 건설업, 배달업 등 관계자의 현장 증언에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위험성 평가 가이드를 보면 노동자 참여가 배제돼 있다"며 "노동자가 아닌 관리감독자가 평가를 하며 제도가 형해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설현장은 건설노조 탄압 이후 '난장판'"이라며 "폭염기에 휴게실을 요구했다가 본인이 속한 팀 전체가 해고당하고 위험상황을 신고했다가 계약이 해지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배달 종사자들 대변해 참석한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배달라이더들은 산업재해에 취약한데도 법정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위험성 평가가 한 번도 실시된 적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플랫폼사의 낮은 운임체계로 라이더들은 한 개의 일감이라도 더 잡기 위해 운전 중에도 핸드폰을 계속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고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생활가전 렌탈 제품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등 방문점검 업무를 하는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의 안중현 정책국장은 "노동자들은 고객평가제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웃으며 감정노동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며 "현 위험성 평가에선 감정노동과 정신건강이 실종돼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지적들은 민주노총이 이날 발표한 위험성 평가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올해 8월2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소속 462개 사업장에 대한 위험성 평가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위험성 평가를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사업장이 10곳 중 2곳인 22.9%로 나타났다. 정기적으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6%였다.
또 모든 유해위험업무를 대상으로 평가를 실시하는 곳이 61.1%인 것으로 조사됐다. 10곳 중 4곳이 법 위반 사업장인 셈이다.
감정노동, 정신건강 분야의 경우 22.4%가 실시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고 28.6%는 실시 대상 기준조차 알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위험성 평가 전 과정에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법 위반 사업장의 비율은 34%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유해위험 요인 파악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지 않아 법 위반에 해당하는 사업장은 57%였다. 또 현장 개선안 수집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곳은 66%, 현장 개선 이행 점검에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곳은 67%로 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장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위험성 평가 지침은 유해위험 요인 파악 등에 노동자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위험성 평가 실시 전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육 실시율은 41.2%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인 58.8%가 법 위반 사안에 해당하는 것이다. 교육을 아예 실시하지 않거나 알 수 없다고 답한 경우도 28.8%에 달했다.
위험성 평가 실시 이후 현장 개선 관련 질문에는 65.8%가 형식적 개선만 진행되거나 개선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원청이 하청 노동자 작업에 위험성 평가를 형식적으로 실시하거나 실시하지 않는 사업장은 67.2%에 달했다. 34.2%는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아 법 위반 사업장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76%는 위험성 평가 제도개선을 위해 '노동조합 참여 보장'을 1순위로 꼽았다. 55.8%는 위험성 평가 결과를 고용노동부에 보고하거나 정부 감독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의 위험성 평가 실시 현황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그런데 현행 법에는 위험성 평가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고 고용부 보고 의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위험성 평가 관련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위험성 평가 미실시, 부적정 실시에 대한 처벌 조항 도입 ▲위험성 평가 결과 고용노동부 보고 의무화 ▲위험성 평가 전 과정에 노동자 대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노동자 참여 및 활동 시간 보장 등을 제언했다.
한편 이날 발표 현장에 참석한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본질보다 형식에 치우친 위험성 평가 제도가 횡행하고 있다"며 "노동자 참여를 적극 보장한 유럽과 달리 형식적 수준에서만 법령에 반영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위험성 평가에서 노동조합 참여를 의무화하고 평가 의무 위반 시 벌칙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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