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아 듣지 못했던, 44년 만에 도착한 목소리 [프리스타일]

장일호 기자 2024. 10. 2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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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해방되고도 46년 만의 일이었다.

2017년부터는 법정기념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그리고 2024년 9월30일, 44년 만에 또 다른 목소리가 도착했다.

조사위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와 명예 회복, 배·보상을 위한 권고사항을 종합보고서에 담아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했지만, 후속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마련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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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해방되고도 46년 만의 일이었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씨(1997년 작고)의 공개 증언이 시작이었다. 2017년부터는 법정기념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럼에도 쏟아져 나온 말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의 존재를 드러냈고, 무엇보다 다른 피해자들의 용기가 되어주었다. 이들이 자신이 경험한 폭력을 자신의 경험으로만 남겨두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2024년 9월30일, 44년 만에 또 다른 목소리가 도착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으로 같은 무늬의 스카프를 맨 여성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을 위해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이었다. 2020년 시작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의 조사 과정에서 ‘1번 피해자’ ‘2번 피해자’ ‘35번 피해자’ ‘77번 피해자’였던 이들이 번호와 익명이 아니라 각각 최경숙·김선옥·김복희·최미자라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로 무대에 섰다. 조사위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와 명예 회복, 배·보상을 위한 권고사항을 종합보고서에 담아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했지만, 후속 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마련된 자리였다. 윤경회 전 조사위 팀장은 국회의원 29명이 공동주최한 이날의 증언대회가 “그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자리”임을 강조했다.

9월3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 참석한 피해자들. ⓒ연합뉴스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는 이들의 어깨가, 준비해온 원고를 쥔 손이 자주 가늘게 떨렸다. 오열과 침묵 사이에 다 헤아려지지 않는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44년간 이들이 내내 침묵해왔던 것은 아니다. “쟁점 사안이 아니어서” “너무 끔찍해 믿을 수 없어서(1989년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이들의 경험은 ‘문제’조차 되지 못했다. 강요된 침묵이었다. 묻지 않아서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폭력의 경험이,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싸움임을 끝내 잊지 않았다. 이날의 증언대회는 피해 당사자들이 공동체에 대한 믿음으로 나선 자리가 아니었을까. 우리 사회가 이제는 ‘듣는 귀’가 되어줄 수 있다는 기대 말이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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