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아름다운 구속’은 가능한가

임현서 법무법인 초월 대표변호사 2024. 10. 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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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 입구. /뉴스1

“하이고, 이것도 구속이네….”

자신을 괴롭히던 건달들을 피해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꾸며 도망다니던 의뢰인은 수사기관의 연락도 제대로 받지 못하다가 체포됐다. 체포된 후 모든 내용을 자백했고 이렇다 할 전과도 없었지만 결국 역시나 구속됐다. 구속 상태에서 받은 재판은 5분 만에 끝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구치소를 나오게 됐다. 이렇게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게 금방 다시 사회로 나온 의뢰인들을 보면 종종 의문이 든다. 애초에 구속이 필요했던 게 맞는 걸까?

구속. 형사재판에서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먼저 잡아 가두는 것이다. 구속 기간은 미결구금 일수로서 형기에 산입된다. 그래서 어차피 죄를 지은 것이 확실하다면 벌을 먼저 받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라는 옛말도 있으니 징역도 먼저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나 구속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본 사람들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준비 없이 갇히면 재판 준비도, 사회생활 관계도, 가정의 평화도 망가지기 쉽기 때문이다.

구속영장 청구와 발부 건수는 지난 30여 년간 확연히 줄어들었다. 1997년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14만3591건이었고 그중 무려 82.1%가 인용되어 발부 건수는 11만7907건에 이르렀다. 검찰에 접수된 전체 211만8347건의 사건 중 6.8%에 대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던 시절이었다. 시대가 달라져 지난해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2만6266건이었고, 그중 79.5%가 인용되어 2만882건이 발부되었다. 27년 전에 비해 거의 5분의 1을 밑도는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법률이 정하고 있고, 이는 헌법원칙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하나 이러한 법 원칙과 국민감정은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예컨대 흉악 범죄를 범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가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같은 사회적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사기와 같은 재산 범죄의 경우 불구속 기간을 살뜰히 활용해 범죄 수익을 은닉하고 소비하는 광경도 왕왕 발견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속 사유인 범죄의 상당성, 주거 부정,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 등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로부터 사실상 변한 것이 없다. 이후 구속 사유를 심사함에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규정이 추가됐지만 때로는 변호사로서도 무엇이 구속이고 불구속인지 가늠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 전반의 이해와 눈높이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사건들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재산 범죄로 얻은 막대한 범죄 수익을 가상자산으로 환전해 은닉하고자 하는 피의자가 있다면 그 은닉 행위만 놓고 보아도 구속 사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반면 현실은 오히려 이런 이들보다는 신용 불량으로 본인 명의 휴대폰을 쓰지 못해 연락이 닿지 않은 피의자가 으레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다. 한편 재판만 6개월 지연시키면 구속 피고인이 기간 만료로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니 변호인들이 재판 일정을 늘어뜨리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누가, 왜, 얼마나 구속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두 평범한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들일 것이다.

여차하면 구속이 되는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동시에 국가의 보호 수준과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기준 역시도 많이 높아졌다. 누구를 가두고 누구를 풀어주느냐가 다만 국가와 피의자·피고인 사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된 이유이다. 이제 함께 이야기해볼 때가 됐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구속의 기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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