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리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이야기

우다빈 2024. 10. 2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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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TV '나의 해리에게', 후반부 진입하며 입소문 시작
신혜선의 1인2역 향한 호평 이어져
제2의 '유어 아너' 될까
최근 방송 중인 지니TV '나의 해리에게'는 새로운 인격이 발현된 아나운서 은호와 구 남자친구 현오의 마음속 감춰뒀던 상처를 치유하는 행복 재생 로맨스다. 지니TV 제공

'유어 아너' 발자취를 따르듯 '나의 해리에게'가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비록 지니TV에서만 볼 수 있지만 ENA에서 재방송 편성이 잦은 탓에 유입 시청자가 적다고 볼 수 없다. 극을 이끄는 신혜선은 그간 쌓은 내공을 톡톡히 발휘하며 묵직한 연기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된 소재인 '해리성 정체 장애'를 시청자들이 십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신혜선의 연기 덕분이다.

최근 방송 중인 지니TV '나의 해리에게'는 새로운 인격이 발현된 아나운서 은호와 구 남자친구 현오의 마음속 감춰뒀던 상처를 치유하는 행복 재생 로맨스다. ENA에서도 방영 중이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나의 해리에게'는 1회 2%로 출발, 8회에서 3.4%(전국 가구)를 기록했다. 특히 8회는 수도권 가구 4.1%를 기록하면서 수도권, 전국 모두 자체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여기에 펀덱스가 발표한 10월 2주차 TV와 OTT 화제성 순위 중 동영상 화제성 1위를 차지하며 순항을 유지 중이다.

현재 방송 중인 타 드라마들이 OTT에서 TV 시청층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쏠쏠하게 맛보고 있기 때문에 '나의 해리에게'의 폐쇄적인 마케팅이 다소 안타깝기도 하다. 오리지널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기에는 더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ENA는 기존 편성 요일 외에도 모두 재방송을 송출, 주7회 편성으로 유입층을 끌어모으고 있다.

작품은 주은호의 두 인격과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 정현오 강주연과 펼치는 각기 다른 두 가지 로맨스를 토대로 여러 서사를 풀어낸다. 주은호(신혜선)와 정현오(이진욱)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각기 캐릭터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고 정의를 규정한다. 주인공인 주은호(또는 주혜리)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곁에 있는 인물들 역시 잔잔한 위로를 받으며 상처를 치료한다.

'나의 해리에게'에서 신혜선은 14년 차 무명 아나운서 주은호와 주은호의 또 다른 인격이자 주차관리소 아르바이트생 주혜리, 상반된 두 캐릭터를 선보인다. 드라마 스틸컷
'나의 해리에게'에서 신혜선은 14년 차 무명 아나운서 주은호와 주은호의 또 다른 인격이자 주차관리소 아르바이트생 주혜리, 상반된 두 캐릭터를 선보인다. 드라마 스틸컷

이야기의 주 소재인 해리성 정체 장애는 의식, 기억, 정체감, 환경에 대한 지각 등과 같이 정상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성격 요소들이 붕괴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다. 주은호는 동생의 실종으로 인해 자신 안의 낯선 인격 주혜리를 만나게 됐다. 주은호가 오후 방송을 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나는 주혜리는 주차관리소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꽤 뻔뻔한 말투를 쓰는 주은호는 자존감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회사에서의 존재감, 연인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은호는 더 뾰족한 갑옷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반대로 주혜리는 한없이 풀어져 있다. 힘없이 팔랑거리는 몸짓이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방어벽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강주연(강훈)에게 돌발 키스를 하는 것까지 자신감이 넘친다. 이렇듯 아나운서인 주은호와 주차관리소인 주혜리는 외적으로만 다른 것이 아니다. 최근 회차에서 정현오의 결혼 소식에 충격을 받고 주은호는 "행복하고 싶었다"라는 문구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다시 등장한 주혜리가 어떤 식으로 전개를 풀어갈지 남은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높다.

이 가운데 신혜선의 연기가 특출나다. '철인왕후'에서 1인 2역,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 인생 19회차를 살고 있는 여자를 연기했던 신혜선은 한층 더 까다로운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다. 신혜선이 걸음걸이나 눈빛 등 비언어적인 신 곳곳을 채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몰입도가 절로 높아진다. 또 후반부에 진입하면서 강훈의 호소력 짙은 연기도 눈물샘을 자극한다. '로맨스 장인' 이진욱에 가려졌던 강훈이 어느 순간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 시청률 상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이 이야기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다루지만 질환의 치료나 극복을 논하는 것이 주가 아니다. 오히려 현대인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 우울감과 불안감, 그리고 자아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작품의 강점은 정직하고 곧다는 것이다. 옆길로 새지 않고 주은호가 받은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극복 과정을 직진하듯 바라본다. 거대한 복수나 화려한 액션은 없지만 한 인간이 지금을 살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위로하는지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답을 건네는 '나의 해리에게'가 보다 주목을 받길 바라는 이유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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