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에서 장례식이 열립니다…지역대학 ‘기초학문의 죽음’

김현수·김원진 기자 2024. 10. 23. 21: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취업 유리한 실용학문 위주 재편에
법학부 등과 함께 신입생 모집 중지
폐과 수순…내달 추모 형식 학술제
‘무전공 선발 확대’ 등 정부 정책 영향도

신입생 모집 중지로 사실상 폐과 수순을 밟는 대구대 사회학과가 다음달 ‘장례식’(Memorial Party)을 연다. 곧 사라질지 모를 사회학과를 기리는 추모 형식의 학술제다. 통폐합 등 구조조정 압박을 받는 지역대학에 속한 인문·사회계열 학생과 연구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역부터 시작된 인문·사회계열 학과의 축소가 지역사회와 대학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대 사회학과는 최근 사회학 연구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대구대 사회학과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알렸다. 학과 측은 “대학 본부 결정에 따라 올해 신입생 모집을 끝으로 지난 45년 동안 이어왔던 사회학과의 일과를 하나하나 마무리한다”며 “사회학과 졸업생과 재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해 준 사회학과의 죽음을 애도하려 한다”고 했다.

대구대 사회학과 3학년 이동현씨(25)는 23일 기자와 만나 “지역에서 기초학문인 사회학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길 바란다”며 “사회학과 장례식이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다음달 7·8일 열리는 학술제 겸 사회학과 장례식에서 ‘학과 폐지 경험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발표한다. 그는 “학과 모집 중지와 통폐합 결정은 등록금을 내며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했다.

대구대는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를 겪은 뒤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 위주로 재편 중이다. 대구대의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과 학칙 개정안을 보면 학교는 사회학과와 함께 법학부·산림자원학과·전자전기공학부·AI학과·주얼리디자인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지한다. 대구대는 2024학년도에도 생명공학과·화학공학과·통계학과 등의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고 웹툰전공·광고PR전공·보건의료정보학과 등을 신설했다.

사회학과를 비롯한 인문·사회계열 학문이 처한 위기는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경남대 사회학과는 2023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도 2021학년도부터 학부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고 있다. 청주대 사회학과 또한 학부생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이밖에 철학과 등을 없앤 대학이 늘어나면서 2018년 1662개였던 인문계열 학과는 2022년 1615개로 줄어들었다. 비수도권 대학의 인문·사회계열 축소는 학령인구 감소·수도권 쏠림·학생 수요 감소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이희영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입시 구조에서 사회학은 선호되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부 정책 방향도 인문·사회계열 학과 축소를 부추긴다. ‘지방시대’를 내건 정부 정책의 방점이 구조조정에 찍히면서 인문·사회계열 학과는 설 자리를 더 잃었다. 교육부는 지역의 대학별 통폐합을 기반으로 한 글로컬 대학을 추진하고 있고, ‘무전공 선발’(전공자율선택제)을 확대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2025학년도부터 적용한다. 존폐 기로에 선 인문·사회계열 학과에는 모두 불리한 정책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만으로 기초학문 폐과를 결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학문 다양성을 해치고, 지역사회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어서다. 사회학과 장례식에 연사로 나서는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사회)학과가 존재해야 다른 과 학생들도 사회학 수업을 듣고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유지된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사회학 전공 학생들은 지역 내 시민사회 등에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런 기회마저 사라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김현수·김원진 기자 kh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