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대통령 면담 테이블

강필희 기자 2024. 10. 2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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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러시아 크렘린궁에 길이가 6m쯤 되는 대형 테이블이 등장했다.

대통령이 외교 사절을 '접견'하지 면담한다 하지 않고, 선생님이 학생을 '면담'하지 접견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이날 사진 9장을 언론에 배포했는데 7장은 산책 사진이고 2장이 실내 면담 사진이다.

면담장이었던 대통령실 파인그라스는 외빈이 오면 케이터링을 해서 식사하는 장소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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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러시아 크렘린궁에 길이가 6m쯤 되는 대형 테이블이 등장했다.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장에 내놓은 것이다. 통상 두 정상이 나란히 앉거나 가까이 마주 보는 형식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에겐 “저쪽 끝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푸틴은 코로나19 핑계를 댔지만, 비슷한 시기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는 악수하고 술잔까지 부딪히는 장면을 노출했다. 공간과 집기 배치의 힘으로 서방 정상을 압도하려는 고도의 기싸움이었던 셈이다.


정치·외교 영역에서 양자 회동이나 회담의 중요도는 접견 차담 오찬 만찬 순으로 높아진다. 오찬이나 만찬은 호스트가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 대접한다는 뜻이어서 차만 마시는 차담이나 접견과는 비교할 수 없다. 면담은 접견의 일종이다. 접견이 격식을 갖춰 손님을 맞는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면담은 비공식 혹은 비형식적이라는 게 통념이다. 대통령이 외교 사절을 ‘접견’하지 면담한다 하지 않고, 선생님이 학생을 ‘면담’하지 접견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격의가 없으면 의전상 결례를 범하기도 쉽다.

‘빈손’으로 끝난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동 모습이 화제다. 대통령실은 이날 사진 9장을 언론에 배포했는데 7장은 산책 사진이고 2장이 실내 면담 사진이다. 길쭉한 사각 테이블 한쪽에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맞은 편에 같이 앉았다. 당사자인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마주 한다기 보다, 대통령이 두 사람을 불러 앉힌 듯한 모양새다. 과거 정부의 대통령과 여당 대표 회동은 물론이고 윤 대통령이 전직 국민의힘 대표와 만났을 때와도 확연히 다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 땐 두 사람이 원탁에 나란히 앉았다. 한 대표도 원형 테이블을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면담장이었던 대통령실 파인그라스는 외빈이 오면 케이터링을 해서 식사하는 장소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는 차담으로 끝냈지만 직후에 추경호 원내대표를 따로 불러 만찬을 가졌고, 한 대표도 친한계 인사들과 번개만찬을 열었다. 대통령실이 이날 만남을 독대가 아닌 면담이라고 격하할 때부터 성과를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검사 후배 혹은 부하 직원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식탁 비슷한 곳에 양손을 짚은 대통령 모습은 면담의 격보다 대통령 자신의 격을 먼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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