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시간 고민한 작전이 김영웅 희생번트? 이 작전 하나에 KS 1차전 삼성의 패배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남정훈 2024. 10. 23. 19:55
40시간. 포스트시즌 역사상 처음으로 서스펜디드가 선언된 2024 KBO리그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1차전이 재개되는 데 주어진 시간이다. 지난 21일 우천 속에 강행됐던 KS 1차전은 삼성이 1-0으로 앞선 6회 무사 1,2루, 김영웅의 타석 때 강해진 빗줄기로 중단됐다. 오후 9시24분에 멈춘 경기는 45분이 지난 뒤인 오후 10시9분에 서스펜디드가 선언됐다.
시점으로는 5회를 지나 강우콜드를 선언할 수도 있었지만, 삼성의 득점이 6회초 김헌곤의 솔로포로 나온 상황이라 KIA에게도 6회말 공격이 주어져야만 강우콜드가 선언될 수 있기에 역대 포스트시즌 통틀어 처음으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22일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그라운드 사정과 비 예보로 또 다시 하루 순연됐다.
우여곡절 끝에 40시간 만인 23일 오후 4시에 재개된 사상 첫 2박3일짜리 KS 1차전. 길고 긴 시간이 주어졌지만,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을 택한 KIA는 웃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지극히도 평범한 작전을 준비한 삼성은 완패라는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KIA 이범호 감독은 6회 무사 1,2루 볼카운트 1B-0S 상황에서 좌타자 김영웅을 상대로 우완 전상현을 올렸다. 이번 한국시리즈에 좌완 불펜 요원만 5명을 포함시킨 이 감독이기에 우완보다 좌완에 다소 약한 김영웅의 성향을 감안해 좌완 투수를 올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 감독의 선택은 주로 마무리 정해영 앞에서 8회에 등장하는 ‘프라이머리 셋업맨’ 전상현이었다. 6회를 반드시 무실점으로 막아내겠다는 필승의 의지가 담긴 선택이었다.
전상현 카드에 맞서는 삼성 박진만 감독의 선택은 너무나 평범했다. 정규시즌 28홈런에, 플레이오프에서도 홈런포 2방을 가동한 ‘거포’ 김영웅에게 희생번트 작전을 내린 것이다. 이번 포스트시즌에 임하는 박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다소 허약한 불펜진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대량득점을 위한 강공이 그 확률을 높이는 것이지만, 박 감독은 눈앞의 안전한 한 점을 위해 희생번트를 선택했다. 그 결과는? 번트에 익숙치 않은 김영웅의 번트 타구는 KIA 포수 김태군 바로 앞에 떨어졌고, 3루로 뛰던 선행주자 디아즈는 포스 아웃됐다.
김영웅에 이어 등장한 박병호는 전상현을 상대로 통산 10타수 1안타로 철저히 눌렸던 타자. 이것을 감안해도 강공이 맞았다. 아웃카운트만 늘어난 상태로 맞이한 1사 1,2루에서 박병호는 상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삼진으로 물러났다. 윤정빈이 볼넷을 얻어내 2사 만루로 찬스를 가까스로 이었으나 이재현이 투수 앞 땅볼을 치면서 삼성의 6회 공격은 무위에 그쳤다. 삼성에 패배의 기운이 스멀스멀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한 점의 리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닥친 박 감독은 2차전 선발로도 거론됐던 좌완 이승현을 6회 마운드에 올렸다. 반드시 1차전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마운드에 오른 이승현은 소크라테스와 김도영, 나성범을 모두 삼진으로 솎아내며 6회를 마쳐 박 감독의 의도는 1차는 적중했다.
그러나 7회에는 박 감독의 아쉬운 선택이 이날 경기를 그르쳤다.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이승현은 선두타자 김선빈에게 볼넷을 내줬다. 다음 타석엔 좌타자 최원준. 우완보다는 좌완에 약점이 있는 만큼 이승현을 마운드에 남겨두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박 감독은 이승현을 내리고 우완 김태훈을 올렸다. 1차전을 마친 뒤 이어질 2차전에도 이승현을 활용하기 위해선 26구를 던진 상황에서 내리는 게 맞다는 판단으로 읽혔다. 그러나 박 감독의 기대와는 달리 김태훈은 최원준에게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고, 김태군의 희생번트로 상황은 1사 2,3루가 됐다.
급해진 박 감독은 김태훈을 내리고 제1 셋업맨 임창민을 조기 투입했다. 서건창을 1루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2사 2,3루를 만들어내면서 투수 교체는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박찬호에게 볼넷을 내주는 공을 강민호가 블로킹해내지 못하고 뒤로 빠졌고, 그사이 김선빈이 홈을 밟았다. 삼성으로서는 참으로 허무하게 1점의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고 1-1 동점을 허용한 것이다. 거기서 끝났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임창민이 일아나서 높은 직구를 요청하는 강민호의 사인과는 반대로 시속 141km 직구를 땅으로 패대기쳤다. 예상과 다른 공에 강민호의 블로킹은 또 한 번 실패했고, 최원준도 홈을 밟았다. KIA의 2-1 역전이었다.
프로 데뷔 21년차, 정규시즌 통산 2369경기로 역대 최다 경기 출장기록을 가진 강민호지만, 생애 첫 KS여서 그랬을까. 연이은 폭투에 멘탈이 무너졌다. 소크라테스의 적시타 때 우익수 윤정빈의 홈 송구를 잡은 강민호는 2루로 뛰는 소크라테스를 잡기 위해 송구했지만, 이는 도루 저지할 때의 강한 송구가 아닌 너무나도 느슨한 송구였다. 소크라테스는 2루에서 여유있게 살았고, 김도영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1-0으로 끝낼 상황이 단숨에 1-4까지 뒤집혀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사실상 이날 경기는 끝난 셈이다.
삼성과 KIA는 전신인 해태 시절이었던 20세기에만 세 차례(1986년, 1987년,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해태의 3전 전승이었다. 해태의 빨간 상의, 검은 쫄바지 유니폼만 보면 호화군단이었던 삼성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모두 패하고 말았다.
23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보여준 삼성의 경기력은 20세기에 해태를 만난 삼성을 연상케 했다. 2박3일간 치러진 1차전을 그렇게 허무하게 내준 삼성은 곧이어 치러진 2차전에서도 1회만 5점을 내줬다. 내심 광주에서 2승을 바랬으나 2패가 유력해진 상황이다. 어쩌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다시는 광주로 돌아올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광주=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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